요짐보 用心棒 (1961) by 멧가비


숨소리도 들릴 듯 지척에 터를 잡고 항쟁 중인 두 야쿠자 조직. 그 사이에 끼인 에도시대(로 추정되는 배경의) 상인들은 고래싸움을 지켜보며 제 등이 터지지 않기만을 빌며 비루하게 보신할 따름이다.


그 위태로운 천칭 구도에 방랑자 한 명이 끼어드니 대충 둘러댄 이름은 '쿠와바타케 산주로'요 통칭 요짐보. 이 와일드 카드 같은 남자의 계획은 그 아슬아슬한 천칭을 흔들어 양쪽을 자멸시키는 것이다. 물론 계획대로 진행되면 재미없으니 주인공에게 약속된 위기가 찾아오기도 하지만, 어쨌든 야쿠자들은 공멸하고 마을에는 피바람이 멈춘다.


재미있는 점. 제목과 달리 주인공 산주로는 그 누구의 요짐보도 되지 않는다. 영화 속 그 누구보다 육체적으로 강하며 가장 중요한 인물이기도 하지만 사실은 돈가방이나 성배와 같은 역할일 뿐이라는 소리다. 가장 강하고 공정한 협객(俠客)을 돈가방이라는 "객체" 그리고 관찰자 입장에 머물게 함으로써 구로사와는 또 한 번 "비정한 세상에 남아있는 인간성"이라는 메시지를 전한다.


산주로와 두 야쿠자 조직이라는 삼각구도 외에도 다양한 인간군상이 있다. 비관주의에 빠진 상점가 주민과 그 안에서도 로맨스를 멈추지 않는 청춘 남녀. 그들을 통해 지방관리 마저 야쿠자들과 결탁해 본분을 져버린 부조리한 세계관에 존재하는 여러 관점을 제시한다.


산주로는 자세한 내력이 베일에 쌓인 신비한 인물이나, 그 비범한 솜씨와 카리스마로 추정컨대 출사(出師)하지 않은 은둔 고수라기 보다는 똥맛 된장맛 다 보고나서 세상을 등진 전직 사무라이에 가까울 것이다. 한 자루만 소지한 칼은 그가 뺏고 빼앗기는 세상의 부조리한 나선에서 벗어나, 필요한 곳에만 칼을 대는 반쪽 짜리 사무라이, 즉 판타지 캐릭터임을 뜻한다.


19세기에 시작한 미국 서부극은 일본의 시대극에 영향을 주고 거기에서 또 영감을 받아 변주되는 유럽의 서부극, 이 돌고 도는 이미지 차용 역사의 어느 분기점에서, 이후에 나올 서부극의 하위 장르 스파게티 웨스턴에 모티브를 제공한 중요한 작품이기도 하다. 거칠고 어딘가 삐딱한 서부극 방랑자의 캐릭터의 원형이기도 할텐데, 어찌보면 일본 시대극 방식으로 풀어낸 슈퍼히어로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연출 쿠로사와 아키라
각본 쿠로사와 아키라, 키쿠시마 류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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