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의 저주 Dawn Of The Dead (2004) by 멧가비


사건 발발, 피난, 가족 드라마, 군중, 갈등과 결집, 탈출. 이 익숙한 패턴. 재난물과 액션이 결합된 21세기 좀비 영화의 표준을 제시한 작품을 하나 꼽으라고 했을 때 이 영화를 1순위에 놓지 않을 수가 있을까. 이전까지 B급 장르 영화 시장에서 그 명맥을 이어 오던 좀비물, 그 어느 흐름 한 지점에서 느닷없이 나타난 돌연변이 작품이다. 장르의 흐름 자체를 바꿔버리고 이후에 나올 동 장르 후배 작품들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치는 하나의 표준이 되어버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겠다.


영화가 나왔을 당시만 해도 이질적인 느낌이 더 컸던 것으로 기억한다. 좀비가 뛴다고? 좀비 대부 조지 A. 로메로도 싫어했다는 후문이다. 물론 비슷한 시기에 나온 [28일 후]도 있지만 그 쪽은 한 끗 차이로 "좀비" 영화가 아니고. 좀비가 뛴다는 설정 자체는 [바탈리언]이 먼저이긴 하지만, 메이저로 제작된 좀비 영화에서 좀비가 뛰게 만듦으로써, 이후의 관객들로 하여금 "좀비는 뛴다"는 개념을 각인시킨 게 이 영화라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28일 후]는 앞서 말했 듯 좀비가 나오는 것도 아니며 다소 컬트적인 면이 있는 작가주의 스릴러에 가까웠으며, [레지던트 이블]은 일단은 (아직은 걷는) 좀비들이 나오고는 있으나 작품 전체의 얼개가 하우스 호러에 가깝다.


좀비가 뛴다는 게 어떤 의미냐 하면, 로메로로 대표되는 클래식 좀비의 느린 걸음에는 일종의 시적인 공포가 있었다. 그냥 뛰어서 도망치면 되지 않아? 라며 딴죽을 걸기엔 서서히 옥죄듯 에워싸고 다가오는 좀비 무리, 때로는 허공을 보며 정처없이 흐느적 거리는 그 망자의 움직임에는 시대상의 반영과 풍자 역시 담겨 있었던 것이다. 천천히 걸어오는데 뭐가 무섭냐, 가 아니라, 무서운 어떤 것이 내게로 천천히 그러나 부지런히 다가오고 있다, 가 클래식 좀비 영화가 관객을 겁주는 방식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2천년대 초반은 80년대 까지의 양식미를, 90년대 과도기를 거치며 뭔가 촌스럽다고 여기며 배척하는 경향이 있던 시기이기도 하다. 2천년대 초반부터 중반까지는 어떤 의미에서 리얼리즘의 시대다. 물론 움직이는 시체가 나오는 영화에서 리얼리즘이 왠말이며, 굳이 따지자면 걷는 쪽이 그나마 말이 되지 않겠냐마는. 하지만 중요한 건, 추상적인 상징성이나 난해한 풍자보다는 좀 더 직접적이고 즉각적인 위협. 물리적인 공포가 선호되었다는 의미에서 리얼리즘이라는 것이다. [파이널 데스티네이션], [쏘우] 등 심령적인 공포보다는 인간의 몸을 직접적으로 파괴하는 시리즈들이 이 시기에 태동한 것 역시 같은 맥락이다.


흡혈귀나 늑대인간 등 클래식 크리처들이 옛 영광을 잃고 호러 역사의 뒤안길로 쓸쓸히 사라지는 동안 좀비만은 살아남을 수 있었던, 오히려 수 많은 대중 관객과 컬트 팬들을 거느릴 수 있었던 요인 역시 리얼리즘에 있었을 것이다. 박쥐, 십자가, 망토, 관, 보름달, 은 탄환 등 익숙한 키워드들이 얽혀있어 그것들 없이는 장르 자체가 성립되기 어렵다고 여겨지던 것과 달리, 좀비라는 건 그것들보다는 조금 덜 유명한 부두교 주술이라는 소재를 가뿐하게 버릴 수 있었을테니 말이다. 바이러스라는 소재는 영화에 뭔가 과학적인 냄새 마저 풍기게 해 줬다.
(2007년작 흡혈귀물 [30 데이즈 오브 나잇]은 그러한 맥락에서의 시도였을 것이다.)


그리고 관객은 땅에 묻혀있던 누군지 모르는 썩은 시체보다는 지금 내 눈 앞에서 바로 눈깔을 허옇게 까뒤집은 채 달려오는 가족, 동료의 공격에 대응한다는 자극적인 전개에 이끌리게 된다. 음산함과 역겨움으로 상징되던 좀비 영화는 본작을 기점으로 뭔가 쿨하고 스타일리시한 색로운 장르로 받아들여지게 된다.






연출 잭 스나이더
각본 제임스 건
원안 조지 A. 로메로 (동명 영화, 19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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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리비아

- 엔드 크레딧과 함께 나오는 뒷 이야기는 파운드 푸티지 형식을 취하고 있다. 좀비 영화에서 파운드 푸티지가 사용된 사례로는 [다이어리 오브 데드]나 [알이씨]보다 선배 격인 셈이다.


- 어린 딸을 남겨놓고 죽은 홀아비 '프랭크'라는 인물이 있는데, [28일 후]에도 같은 처지, 같은 이름의 캐릭터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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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로그온티어 2018/10/26 14:36 #

    ...........읽다보니 리얼리즘이라기 보단 뭔가 자극주의에 가까운 것 같은데요;; 그러니까, 뭔가 아드레날린을 치솟게 하면서 생각할 여지를 없애는 그런 것 말입니다.
  • 멧가비 2018/10/26 17:07 #

    사전적인 의미로서의 '리얼리즘'이라는 단어를 사용한 게 아니라고 본문에 썼지만 부연하자면, 추상적이거나 상징적인 공포 혹은 심령 오컬트 쪽이 아닌, 현실과도 맞닿은 실재적이고 물리적인 공포라는 점에서 리얼리즘이라는 단어를 차용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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