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파이더맨 2 Spider-Man 2 (2004) by 멧가비


플4 게임 엔딩 본 기념 재감상


도입부의 피자 배달 장면을 보자. 길이 막히고 배달이 늦어지게 되자 피터는 과감히 변신! 한다. 경쾌하게 공기를 가르고 가뿐하게 배달에 성공, 하는 듯 했으나 어쨌든 배달은 늦었고 피자 값은 받지 못한다. 코미디인 듯한 이 장면에서 어쩌면 영화가 주인공 피터에게 주는 가장 큰 고민을 읽을 수 있다. 스파이더맨의 가면을 써도 피터 파커가 가진 모든 일상의 문제가 해결되진 않는다는 것이다.


반대로 처음부터 스파이더맨으로서 날아갔더라면 어땠을까! 땅 위를 두 발로 걸어야만 하는 피터 파커의 삶이 스파이더맨으로서의 활동에도 발목을 잡는다는 생각이 슬슬 들기 시작했을지 모른다. 피터 그 자신도 그저 입에 풀칠할 걱정을 하며 사는 소시민으로서 친절한 이웃의 삶을 병행하기엔 너무나 고단하다. 그에게 결단을 내려야 할 순간이 찾아오는 것이다.


"친절한 이웃"이라는 캐치프레이즈(?)에 맞게 이 3부작은 뉴욕 시민의 리액션 역시 적극적으로 포커싱하는 경향이 있다. 위기에 빠진 스파이더맨을 시민들이 원호하는 장면 역시 1편에 이어 또 다시 반복된다. 그러나 '슈퍼'라는 수식어를 가진 영웅과 악당의 싸움에 평범한 시민들이 끼칠 수 있는 영향력이란 미비할 뿐이다. 스파이더맨은 찢어지는 비명을 질러가며 시민들을 구해내지만 그 시민들은 마음과는 달리 결국 스파이더맨을 구하지 못한다.


영웅이 된다는 것. 즉 때와 장소, 이유를 불문하고 타인을 돕는다는 것의 현실적인 피로감을 이토록 사무치게 묘사한 영화는 장르사에서 전무하다. 시리즈물 특히 삼부작 기획이면 대충 두 번째 영화 쯤에서 주인공의 고난과 몰락을 다루곤 하지만 이토록 지난한 생활고를 직접적으로 끌어들여 주인공에게 날카로운 고통을 안기는 경우, 없었다 이거다. 공중 전화기의 동전이 부족해서 사랑하는 여인에게 변명 조차 하지 못 하는 초능력 주인공이잖나. 물론 코믹스 속 피터 파키의 초창기 이미지를 빌려왔을 뿐이긴 하지만, 그걸 대중 관객이 보는 실사 영화로 옮기느냐의 문제는 또 다르지.


슈퍼히어로가 돈에 쪼들리고 인간 관계에 치이다 못해 심인성 발기부전처럼 초능력마저 잃어버리는 전개를 관객이 온전히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라고 샘 레이미는 판단한 것이다. 게다가 피터는 그것 또한 영웅의 길이라며 묵묵히 감내하는 대신, 숫제 의상을 쓰레기통에 쳐박고 도시의 어둠을 외면하는 쪽을 택한다. 그런 지리멸렬한 전재를 실사 영화에, 그것도 1편의 성공으로 관객의 기대감을 한껏 끌어올린 두 번째 영화에서 서슴없이 도입한 것은 레이미의 상업 감독으로서의 천재적인 감각과 괴팍한 예술가로서의 시니컬함 그 중간 어딘가에서 나온 것이라고 믿는다.


영화에서 피터의 진짜 위기는 사실은 생활고가 아니라 혼자 된다는 고립감이다. 해리와 갈등하고 메리제인은 놓쳐버리고, 존경하던 과학자는 괴물이 됐으며, 어렵게 꺼낸 진실에 하나 남은 가족 메이 숙모는 정색하고 만다. 피터가 스파이더맨을 그만 둔 진짜 이유는 혼자 되지 않겠다는 처절한 몸부림이기도 한 것이다. 그래서 '힘'과 '책임'에 대해 논한 전작과 달리 이 영화는 '관계'에 대한 영화다. 주인공 피터를 중심으로 모든 등장인물들이 영화 속에서 한 번 이상은 피터와 갈등과 화해, 해체와 재결합을 반복한다. 전작에서 말하던 '책임'이 '힘'을 가진 나 혼자만의 문제, 힘의 주체가 스스로 결정해야 할 문제라면 '관계'라는 것은 '힘'을 가진 사람 혼자의 힘으로 어찌할 수가 없는 부분인 것이다. 결국 초인적인 능력을 가진 도시의 영웅이라고 해도 혼자 모든 일을 해결할 수 없으며 혼자서 살아갈 수도 없다는 말. 이는 다시 한 번 "친절한 이웃"의 캐치프레이즈로의 원점회귀다. 친절한 이웃을 자처하고 있는 영웅도 그 역시 다른 친절한 이웃들을 필요로 한다.


지하철 시퀀스는 이 장르의 역사에서 역대 최고의 액션이라 감히 확신한다. 단순히 영화 장면으로서의 완성도 뿐만 아니라, 스파이더맨이라는 캐릭터가 같은 장르의 굵직한 선배들인 슈퍼맨과 배트맨 양쪽 모두의 장점을 고루 갖추면서도 그들이 갖지 못한 어떠한 유니크함을 새로이 갖춘 이른바 "뉴 제너레이션"으로서 탄생했었음에 대한 증명이기도 하다. 스파이더맨에게 폭주하는 전철이란, 움직이는 지면임과 동시에 구해야 할 시민들로 가득한 위태로운 건물이기도 하다. 예컨대 슈퍼맨은 애써 지하철에 매달려 있을 필요 자체가 없었을 것이며, 배트맨이었다면 그렇게 공기 저항과 운동 에너지를 무시한 듯이 가볍게 붙어있을 수가 없다. 오히려 첨단 도구를 사용해 본인은 땀 한 방울 안 흘리고 손쉽게 해결했을지도 모른다. 스파이더맨은 이렇듯 초인 영웅과 평범한 인간 양쪽의 면모를 모두 갖춘 복합적인 캐릭터라는 것을, 캐릭터가 탄생한지 수십년이 지나 나온 이 영화가 새삼 발견하고 있는 것이다.


해리가 고블린 변신 풀 세트를 발견하는 장면. 요즘의 마블 스튜디오 영화들이 반드시 끼워넣는 깜짝 쿠키의 원조 격이라 할 수 있다. 물론 이 영화에서의 장면은 어디까지나 쿠키가 아니고 본편 내에 있었으며, 그 전 영화들에도 쿠키라는 게 있었지만 대개는 후일담의 가벼운 장면들일 뿐이었다. 여기서 시작했다고 봐야지.






연출 샘 레이미
각본 엘빈 사젠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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