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크 나이트 라이즈 The Dark Knight Rises (2012) by 멧가비


아무 기념 없지만 스파이더맨, 슈퍼맨 다시 본 김에 덩달아 재감상


사랑하는 여인을 잃고 도시 수호자로써의 상징성을 포기한 배트맨, 모든 것을 잃었다고 자포자기한 그가 미처 가치있게 여기지 못했던, 그러나 원초적으로 가장 중요한 것들이 있었으니, 바로 재산과 건강이다.


새로운 악당 베인은 오로지 건강 하나만으로 배트맨을 꼬마 괴롭히듯 지지고 볶고 나선 재산 마저 앗쌀하게 털어먹는다. 전작의 조커가 배트맨에게 있어서 정서적으로 중요한 것들을 찢어 발겨 놓았다면, 베인은 그냥 물리적으로 퍽퍽퍽이다. 이래저래 멋진 연설을 늘어놓지만 사실은 되게 단순한 놈인 거다. 오히려 그 점이 멋졌다. 막판에 가서 똥꼬의 눈물쑈를 펼치기 전 까지는 말이다.


전작의 신화 같은 결말이 마치 꿈이었을까. 물론 많은 삼부작의 세 번째 영화들이 그렇지만, 브루투스 너 마저! 작중 살얼음판 위를 뒤뚱대면서 걷다가 퐁당 빠져버리는 사람들이 나오는데, 영화가 딱 그렇다. 중요한 지점들에서 몇 번의 치명적인 삐끗함이 있다.



1. 베인의 문제

기껏 영화의 모든 긴장감, 위기감을 다 쌓아놨더니 영화는 그에게서 최종 보스의 타이틀을 박탈하고 무게감 있는 퇴장 마저 허락하지 않는다. 그리고 모든 위기의 순간에 안전하게 뒤에 숨어있다가 타이밍 나쁘게 튀어나온 여왕에게는 시리즈 사상 가장 꼴사나운 최후를 안긴다. 이게 무슨 소리냐 하면, 학급 반장이 한 명 있는데 얘가 반 친구들 전부 리드해서 면학 분위기 끝장나게 조성하고 환경미화는 학년 탑 까지 먹어놨는데 선생이 갑자기, 너 사실 반장 아님, 이러는 꼴. 얌전히 앉아있던 애한테, 사실 니가 반장이니까 가서 걸레나 빨아와, 라고 잠꼬대를 하는 것과 같은 상황이다.



2. 황당할 정도로 편리한 전개

사소하게 여러가지가 있지만 대표적으로 황당했던 게, 무릎 연곯이 닳다 못해 아예 없다던 사람이 대체 어느 행성의 기술인지 보조 기구 하나 달고선 전성기 구력을 되찾는다. 그 뿐인가, 작살난 허리는 접골과 웨이트 트레이닝으로 극복. 아 물론 무슨 사실주의 유럽 영화 주인공도 아니고 배트맨이니까 그럴 수 있다면 그럴 수 있는 건데. 바로 전작에서 개한테 물려서 끙끙대던 거 기억 나는데? 그 때 까지 되게 리얼리스틱한 척 했었는데? 진지하고 싶을 때는 조커 부하한테도 죽빵 얻어맞더니 필요하면 태세 전환해서 갑자기 근성물 소년만화 주인공으로 돌변하고 그래도 되는 거냐고.



3. 주제의식과 결말의 부조화

배트맨이 최고의 위기에 빠지고 다시금 헤쳐나오는 과정에서 강조되는 메시지는 "용기", 공포를 극복하는 것을 그렇게 강조했는데 정작 결말은 배트맨 때려치우고 안식을 갖는다? 그럼 영화 세 편에 걸친 배트맨 활동은 고담 시를 지키고 평화를 유지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결국 본인의 박쥐 트라우마를 극복하기 위한 긴 과정에 지나지 않았다는 소리다.



4. 감독의 자기객관화 실패

앞의 두 영화가 호평 받은 이유를 자칫 잘 못 이해하고 있는 건 아닌지, 맨몸 액션에 끗발 오른 듯 자아도취에 빠져 버리지만. 현실은 닌자 집단의 두 거물이랍시고 만나서는 뒷골목 시정잡배처럼 앙증맞은 주먹질만 주고 받을 뿐이다. 일대일 격투도 그 모양인데, 광장을 뒤덮는 패싸움이라니, 그 목불인견의 조잡한 클라이막스 씬은 이 영화가 있기 전 까지 관객으로서 감독에게 가졌던 수 년 간의 호감을 말끔히 씻어버리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한 마디로, 격투 액션 정말 더럽게 못 찍는 감독이다. 훌륭한 액션 시퀀스들을 그렇게 많이 선보이면서 왜 가장 기초적인 주먹 싸움엔 젬병인 걸까. 이게 어찌 보면 배트맨이라는 캐릭터를 다루기엔 치명적인 약점인 건데, 그냥 나머지 실력으로 그걸 커버한 거다. 대단하다면 대단한 거다.



영화 끝날 때 까지 좋아할 수 있었던 건 캣우먼 뿐이다. 사실상 캣우먼보다는 배트걸에 가까운 캐릭터 해석이지만, 아무렴 어떠랴. 한참 앤 해서웨이 좋아할 때였다.







연출 크리스토퍼 놀란
각본 크리스토퍼 놀란, 조너선 놀란, 데이빗 S. 고이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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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듀얼콜렉터 2018/11/03 03:57 #

    다크나이트에서 진짜 소름 돋으면서 관람하고 라이즈에서 엄청 큰 기대를 가지고 봤는데 중간쯤인가 그 수용소 부분에서 '뭔가 이상한데...'라는 기분을 느끼면서 진짜 언급하신대로 결말부에서 폭망해버렸습니다 ㅋㅋㅋ 진짜 그 장면만 생각하면 화가 나요, 그리고 이렇게 용두사미로 결말을 내다니 하아... 그래도 진짜 캣우먼은 진리였습니다, 이것도 동의.
  • 멧가비 2018/11/03 14:22 #

    처음 봤을 때는 이게 그 다크나이트의 후속작이 맞나, 라는 생각 까지 들더란 말이지요. 놀란 감독이 아무래도 부담감이 컸던 건지 왜 그랬는지는 모르겠습니다.
  • 잠본이 2018/11/04 00:26 #

    개인적으론 닭나잇이 좀 비정상적으로 잘나온거고 이쪽은 그냥 어떻게 찍어도 돈은 벌릴테니 쉬어가는 마음으로 대충 찍은거 아닌가 뭐 그런 생각도 듭니다. 별로 안찍고싶었는데 워너가 떠민건지 아니면 차기작 찍을 돈 모으려고 자기가 알아서 나선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 멧가비 2018/11/04 11:05 #

    놀란 영화들은 늘 메이저 스튜디오가 공동 제작, 배급으로 참여하기 때문에 원치 않은 작업으로라도 본인이 돈을 모아서 영화를 찍을 필요는 없을 겁니다. 하지만 본인이 백퍼센트 의욕적으로 참여한 영화가 아닌 건 맞아요. 전작들에 대한 유종의 미를 거두고 싶었던 게 아닐까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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