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테이션 에이전트 The Station Agent (2003) by 멧가비


타인과의 관계를 형성하거나 이미 만들어진 관계를 다루는 방식은 마당 달린 집에 비유할 수 있다. 가장 이상적인 관계 형성 방식이라면, 대문은 열어놓되 현관을 사이에 두고 현관 너머의 사람을 신중히 파악한 뒤 들일지 말지를 결정하는 것이겠지만 그렇게 열려 있는 듯 신중하게 밸런스 좋은 인간 관계를 유지하는 사람은 어째선지 주변에 많지 않다. 원래 좋은 건 항상 희귀하다.


그런가하면 현관이며 대문이며 모두 꼭꼭 걸어 잠그고 혼자만의 침잠된 시간 안에서 오롯이 자신 내부의 세계관에만 소통하는 것이 편안한 사람이 있고, 문이란 문믄 전부 열어 제껴 피아구분에 의미를 두지 않거나 그냥 무신경한 사람도 있다.전자의 사람은 불필요한 감정 소모와 시간 낭비를 피할 수 있지만 삶에서 얻을 수 있는 즐거움의 폭도 좁다. 호자의 경우는 자신의 기분을 위해서라면 전자를 못살게 굴거나 최소한 성가시게 하지만 자신은 그것을 인식 조차 못한다. 이 두 유형은 대개의 경우 공존이 불가능하다.


주인공 핀의 외골수적인 삶은 전자와도 같은 자신을 후자 같은 사람들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선택한 것이다. 관계의 창을 닫은 사람들에게 시간이란 무수히 남아 도는 것. 그래서 핀은 언제나 걷는다. 타인(후자 쪽)이 보기에 전혀 중요하지 않은 것만 같은 일에도 열중한다. 하지만 이토록 홀로 풍요롭고 무탈한 삶의 불행한 점은, 그것이 영원히 안정적으로 지속될 가능성이 매우 낮다는 점이다.



핀은 뜻하지 않게 "친구라고 불러도 될" 만한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마음의 문, 아니 정확히는 태도의 문을 닫는 이유. 핀에게 있어서 그것은 영화 초반과 중반 이후가 전혀 다르다. 자신에게 상처 입할만한 타인과 마음의 안에 들여도 될만한 타인을 구분하는 것이 어렵고, 그것에 들일 마음의 에너지, 자신에게 아무 의미가 없는 낯선 이들에게 소비할 마음과 관용이 아까워 혼자를 택했던 핀에게, 이제는 그것들이 사라진 후의 공허함이 문제가 된다.


핀의 원래 직업은 장난감 가게의 기술공이었다. 이것은 소위 "어른"의 세계관이라는 것을 받아들이지 않는 핀의 인간 관계에 대한 은유다. 어른의 세계관이란 잃을 것을 알면서도 받아들이고, 잃은 후 마음에 오는 파도 역시 감내하는 것. 핀은 세상에서 받을 상처를 하나하나 이겨내야 하는 수고스러움이 혼자 사는 삶의 외로움보다 컸기 때문에 어른이 되는 것을 미뤄왔을 것이다.


어째서 기차역인가. 기차역이야말로 마치 사람의 마음처럼 불특정 다수 타인들이 발자국을 남기고 이내 떠나가는 곳이다. 더이상 아무도 찾지 않는 폐쇄된 기차역은 이것을 상속 받을 당시의 핀과 똑같다. 핀은 조와 올리비아라는 친구와 함께하는 동안 "달리는" 기차의 영상을 기록으로 남긴다. 친구라는 것을 만들고, 그것을 잃은 후의 상처도 감내할 준비가 된 핀은 사람이 살아가며 타인들을 만나고 헤어짐에 있어서 반드시 상실만 있는 것이 아니라, 그가 남긴 열차의 영상처럼, 함께 보냈던 순간들의 기억만큼은 남는다는 것을 깨달았는지도 모르겠다.







연출 각본 토마스 맥카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