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 워 Z World War Z (2013) by 멧가비


초반 30분, 정말 끝내준다. 클리셰에 발목 잡히지 않는 쾌속 전개. 상황 판단 빠르고 실력 좋은 주인공. 짜증을 유발하지 않는 합리적인 전개. 쓸데 없이 분란을 유발하는 캐릭터도 없고, 특히 책을 이용해 간단하지만 유용한 방어도구를 만드는 장면에서는 감탄을 하게 된다. 왜 저 생각을 아무도 안 하는 거지?


하지만 영화의 이 모든 장점과 특징들을 간단히 그리고 아득히 뛰어넘는 이 영화만의 개성은 브래드 피트의 출연 그 자체다. [새벽의 저주]부터 시작된 좀비 장르의 속도감과 스펙터클함 등, 메이저 장르로 분화한 현대 좀비 영화의 한 계보에서도 특 A급이랄 만한 사실 아닌가. 세계 각지를 도는 로케 촬영, 헬기에 항공기에, 그리고 브래드 피트가 주인공. 과연 좀비 거장 조지 A. 로메로가 시체 삼부작을 만들면서 스티브 매퀸이나 로버트 레드포드가 주인공인 좀비 영화를 상상한 적이 있었을까.  하지만 우리 세대는 결국 브래드 피트가 좀비와 싸우는 영화를 갖고야 만 거다. 애초에 디카프리오도 관심을 가졌던 역할이라잖나.


'좀비'라는 소재는 그 심플한 개성 때문에 사회 풍자를 담을 플랫폼으로도 범용성이 높았다. 대신 그 범용성은 좀비 영화를, 누구나 만들 수 있는 B급 이하의 소재로 인식시키기도 했을 것이다. 당장에 흡혈귀 영화는 십 수년 전에 개리 올드먼이나 , 톰 크루즈, "브래드 피트" 등이 출연했고, 잭 니콜슨이 늑대인간인 영화 역시 이미 90년대 중반에 존재했다. 그렇게 다른 호러 캐릭터들의 귀족적 행보와 달리 좀비물은 철저히 B급 지향이던 역사를 지나 오히려 지금에 와서는 역사의 뒤안길로 밀려난 흡혈귀나 늑대인간과 달리 홀로 메이저로 남을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리고 재미있는 것은, 같은 시대에 여전히 B급 C급 좀비 영화들 역시 어딘가에서는 만들어지고 있으니, 이젠 같은 장르 안에서도 저본의 논리에 의해 서로 다른 종으로 진화하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물론 브래드 피트 없이도 충분히 재미있는 영화다. 도시 재난물 같은 스펙터클과 긴장감으로 시작해 폐소 스릴러 등 작고 집약도 높은 서브 장르를 거쳐 끝에는 로메로 풍의 정통 형식으로 회귀하는 흐름이 특히 좋다. 하지만 얘기를 다시 원점으로 돌려, 그런 다양한 구성을 한 편 안에 모두 배치할 정도의 예산과 기획이 어디에서 나왔는지가 관건이다. 투자자들이 뭘 보고 좀비 영화에 그 많은 돈을 풀었겠냐고. 당연히 브래드 피트지. 한 편의 거물 배우의 존재가 영화를 넘어 장르 자체에 어떠한 영향을 끼칠 수 있는지에 대한 하나의 실험 보고서 같은 영화인 셈이다.







연출 마크 포스터
각본 매튜 마이클 캐너핸, J. 마이클 스트랙진스키
원작 맥스 브룩스 (동명 소설, 2006)


덧글

  • 解明 2018/11/05 12:48 #

    빵형의, 빵형에 의한, 빵형을 위한 영화?!!
  • 멧가비 2018/11/05 13:02 #

    빵형 그 자체인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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