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스트 The Mist (2007) by 멧가비


"화살촉 프로젝트"라는 모종의 실험은 닿아선 안 될 곳에의 문을 열어 인류에게 재앙과도 같은 초자연 현상과 조우하게 한다. 마치 금기를 행한 인류에게 내려진 징벌과도 같다. 선악과를 따 먹거나 바벨탑을 쌓은 인간들을 벌줬다는 그리스도교 경전의 에피소드들 처럼 말이다. 이런 종교 메타포적 이해 안에서, 그 유명한 "카모디 부인"은 어쩌면 그저 잔혹한 광인일 뿐인 게 아니라, 정말로 신의 의지를 담은 그릇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역발상이 가능하다. 


신의 권능인지 뭔지를 사유화하려고 선을 넘은 광신도 카모디는 결국 권총에 맞아 일종의 죗값을 치른다. 적어도 카모디에게 저항했던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로마군이 예수를 십자가에 매달 때도 비슷한 생각을 하지 않았을까. 신의 뜻이란, 인간의 그릇으로 이해할 수 없기에 광기처럼 보이는 것일 수도 있단 말이지. 인간은 자신들이 이해할 수 없는 영역에 있는 것을 의도적으로 두려워 하는 존재니 말이다.


마트를 떠난 "정의의 편"들이 어이없이 최후를 맞는 것은 그 맥락에서 설득력을 얻는다. 신의 대리인의 머리에 총알이라는 면류관을 씌웠으며 종교의 큰 금기 중 하나인 자살을 택했기 때문이다. 그에 대한 신의 마지막 벌은 그 유명한 탱크 장면인 거고. 그래야지만이 그 마지막 비극은 전체의 내러티브 안에서 의미를 갖는다.


가혹하고 잔혹하다. 하지만 생각해 보면, 그리스도교 뿐만이 아니라 많은 종교, 문화권이 발명해 낸 '신'이라는 캐릭터들은 관대하고 인본적인 존재들이 아니다. 게다가 신이라는 존재들은 대개의 경우 아둔하다. 그 많은 사람들 중 카모디 같은 기회주의적인 인간을 그릇으로 삼은 점만 봐도 이 영화 속 어딘가 있을 신은 판단력이 그 권능에 비례하진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나는 이 영화를 볼 때 마다 알프레드 히치콕의 [새]를 떠올리곤 한다. [새]에 대한 안티테제적 결말 때문이다. 인간 사이의 드라마와 유대감이 강조되었으나 새떼라는 형태의 재난은 여전히 계속된다고 여운을 남기던 히치콕의 결말. 반대로 이쪽은 일단 괴수 재난은 빠른 시일 내에 정리될 것으로 보이지만 그에 이르는 과정에서 인간성의 상실을 목격했으며 목숨 외의 모든 걸 잃은 주인공의 비참한 모습으로 영화가 마무리되기 때문이다. 그 결말은 마치 '욥기'를 연상시키기도 한다. 그러나 욥이 그러했던 것처럼, 영화가 끝난 후의 주인공 데이빗이 그 아둔하고 이기적인 신에게서 복을 받았을 거라는 후일담은 상상조차 하기 힘들다.






연출 프랭크 다라본트
각본 프랭크 다라본트
원작 스티븐 킹 (동명 소설, 1980)

덧글

  • 로그온티어 2018/11/05 11:29 #

    아, 종교적인 해석도 괜찮네요. 종교적 어법과 맥락에서 코스믹호러의 테마가 탄생했으니, 미스트는 코스믹호러의 근원을 파고드는 영화가 될 수도 있겠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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