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의 얼굴 他人の顔 (1966) by 멧가비


'나'라는 존재는 생물학적으로 "나 스스로 존재함"으로써 존재하지만, 관계학적으로는 타인에게 인식됨으로써 존재한다.


얼굴이란 타인에게 나를 인식시키는 가장 즉각적인 수단이다. 주인공은 사고로 얼굴을 잃은 남자. 남자는 얼굴을 잃음으로써 관계학적인 측면으로서의 자기 자신이 사라지고 있다 생각하며 자신의 존재를 부정하는 자학에 빠져들게 된다. 그러나 그는 끊임없이 자학의 말을 중얼거리면서도, 사실은 타인들의 반응을 살피며 자신의 존재가 "아직"은 소멸되지 않았음을 확인하는 음흉한 남자이기도 하다.


그러던 와중에 가면이라는 새로운 얼굴을 얻게 되고, 가면을 통해 세상에 다시금 복귀할 것을 약속한다. 하지만 가면이 제공하는 익명성, 투명성을 느낀 후로는 약속과 달리 가면을 통해 자신이 아닌 불특정 타인의 행세를 하게 된다. 그 결과, 가면이 만든 가상의 인물에 도취되어, 타인과의 관계속에서의 '나'는 물론이고, 자기 자신이 인식하는 '나'마저 잃어간다. 남자는 얼굴을 잃고 자조하던 당시, 얼굴이란 건 그저 만주 껍데기에 불과하다며 정신승리를 하곤 했다. 그러나 그 얄팍한 껍데기 한 장이 주는 정신적 힘을, 그리고 그 고양감의 이면에 존재하는 공허함을 남자는 너무 얕봤는지도 모르겠다. 남자는 점점 자기 자신이 만든 가짜 자아에, 진짜 자아를 먹혀간다.


남자는 타인들이 이미 알고 있는 자신과 가면이라는 새로운 자신을 분리해 이중생활을 즐기려던 음험한 마음을 품으나, 자신이 그토록 도취됐던 가면이 누군가에게는 정말로 "껍데기 한 장"일 뿐 아무 의미도 없으며 그 이중성마저도 쉽게 간파당한다는 사실을 깨닫자 밀물 앞에 세운 모래성처럼 일거에 무너진다. 결국 이 남자는 끝내 원래의 자신도 되찾지 못하고 가면으로 만든 또 다른 자신도 완벽히 자신의 것으로 만들지 못한 것이다.



새로운 얼굴을 통해 새로운 자아를 만들어낸다는 기본 개념은 월터 힐의 [쟈니 핸섬]에서, 가면 속과 밖의 두 자아의 충돌이라는 철학적 해석으로서는 오우삼의 [페이스 오프]와 김기덕의 [시간]에서 변주된다. 얼굴이라는 껍데기 한 장이 갖는 힘에 대한 고찰이라면 조너선 글레이저의 [언더 더 스킨] 역시 그 영향력의 범주에 넣어도 될 것이다. 그리고 잊어선 안 될 것은, 가면을 또 하나의 자아로 해석하는 것은 서구의 슈퍼히어로 장르에서도 절대적으로 중요한 개념이다. [왓치맨]에서 로어셰크와 나이트 아울이 가면을 쓰기 전과 후로 어떻게 다른 태도를 보이는지를 생각하면, 심리학적으로 이 영화와 정확히 궤를 같이 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 영화의 제목에 숨긴 중의적인 의미가 마음에 든다. 얼마나 흉측하게 망가졌든, 그 망가짐에 얼마나 좌절하든, 남에게는 아무 의미없는 그저 "타인"의 얼굴이라는 뜻으로도 해석할 수 있다. 차갑고도 건조한 주마간산(走馬看山)의 의미이다. 영화 속에서 남자의 주변 인물들이 남자에게 피상적인 위로의 말만을 건네는 모습처럼 결국 인간은 타인의 고통이나 정서를 완벽히 이해할 수 없다는 뜻이다. 아니 완벽히는 커녕, 인간은 평생 자신의 감각 안에 갇혀있을 뿐, 타인을 이해한다 공감한다 말하는 건 본질적으로는 공감하는 척 하는 것이다.


남자의 마지막 발광은 현대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익명성 뒤에 숨어 온갖 패악을 부리는 이른바 키보드 괴물들이, 어느 순간 자신의 맨 얼굴을 들켰을 때 이 남자보다 과연 나을 수 있을까.







연출 테시가하라 히로시
각본 아베 코소
원작 아베 코소 (동명 소설, 19664)


덧글

  • 로그온티어 2018/11/06 13:40 #

    그러고보니 포스터도 은근히 페이스오프랑 비슷하네요;;
  • 명탐정 호성 2018/11/06 18:49 #

    원작 소설이 한국에서도 나왔습니다.
    그리고 의사 역의 배우는 오카다 에이지(같은 원작자의 모래의 여자 영화판 주인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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