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흙강 泥の河 (1981) by 멧가비


시간적 배경 1955년, 전후 약 10년. 빈곤은 끝났다는 나라의 선언과 달리, 도시의 아직도 방치되어 있으며 사람들의 생활은 그 이상으로 희망없이 치열하기만 하다. 전쟁을 겪은(전범국 국민이라는 자각과 특별한 이념도 없었을 평범한) 사람들에게 10년이란 그 모든 것을 극복하기에 턱없이 부족했으며, 그만큼 마음 안에는 패배감과 허무함, 상실감 등 복잡하게 뒤엉킨 감정들이 남아있다.


두 소년이 있다. 패전 즈음에 태어나 상흔을 직접 목격하지 않은 순수한 세대. 소년 노부오는 또 다른 소년 키이치를 만난다. 비교적 전후를 잘 극복한 노부오의 가정과 달리 키이치에게는 전쟁의 여파가 여실히 남아있다. 아비는 전사하고 홀로 남은 어미는 맨몸으로 내몰린 세상에서 곤궁한 삶이나마 이어갈 요량으로 매춘을 선택했다. 똑같이 허름한 옷을 입고 길바닥에서 놀고 있지만 둘의 미래가 어떻게 갈릴지는 자명하다.


노부오의 가정은 전쟁에서 생환한 아버지가 우동 가게를 열어 나름대로 부족한 것 없는 생활을 이어가지만, 아버지에게는 전쟁통에 져버린 전처, 만주 전선에서 전사한 전우들에 대한 죄책감이 응어리로 남아있다. 키이치의 어머니는 손가락질 받는 삶 가운데에서 마지막 자존심이나마 지키고 있으며, 가난이 부끄럽지만 아랑곳 없이 언제나 명랑한 키이치와 달리 조금 먼저 태어난 그의 누이는 예의 바르지만 언제나 그늘져 있다. 흑백의 화면 만큼이나 명료한 명암.


영화에서 강은 곧 죽음으로 은유된다. 노부오는 우연히 다슬기잡이 아저씨의 개죽음을 목격하고선, 강 속의 괴물 잉어가 잡아갔다는 말을 한다. 그러나 사실은 괴물 잉어가 아니라, 닿는 것을 집어삼키는 강 밑의 질퍽한 진흙 바닥 때문일 거라는 걸 관객은 안다. 잉어가 아니라 강이 사람을 잡아먹는다. 영화에서 강은 죽음의 이미지다.


키이치에 가족은 선상민이다. 집 대신 초라한 조각배에 세간살이를 들여놓은 임시 거처인데, 강가에 줄로 메인 채 물결에 따라 흔들리는 배 위에서의 삶이란 완전한 생존을 보장받지 못하고 늘 어느 한 켠에 죽음을 끼고 있는 삶에 다름 아니다. 키이치 엄마는 남편의 전사 후 뭍을 싫어하게 되었다 말하지만, 그 역시 마지막 자존심이었겠지.


노부오와 키이치의 인연의 끝은 예상치 못한 순간에 기별 없이 찾아온다. 좋은 부모의 보호 아래에서 그늘 없이 자라던 노부오는 시대의 흉터와 별안간 무방비로 맞닥뜨리고 만다. 아직도 전쟁통인 것 처럼 사람이 길에서 죽어나가는 일이 일상의 일부인 시대이지만, 노부오는 누군가의 죽음보다 다른 누군가가 살기 위해 선택한 삶에 오히려 충격을 받는다.


키이치의 어머니는 자존감의 마지막 얇은 껍질을 빼앗기고 만다. 비루한 조각배 쪽방 안에서도 곱게 단장하고 앉아있을 정도였던 그의 마지막 자존감은 그가 그렇게 손가락질 받는 삶이나마 이어나가는 이유였을 자식들, 그 자식들의 친구에게 민낯을 보이면서 끝장난다. 강가의 우동집과 강에 매어놓은 조각배, 먼듯 가깝게 살던 두 소년은 그렇게 잠깐의 우정이나마 어른들의 세상에 의해 잃어버리고 마는 것이다. 마음이 쾅 하고 무너진다.






연출 오구리 고헤이
각본 시게모리 타카오
원작 미야모토 테루 (동명 소설, 197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