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의 낙인 殺しの烙印 (1967) by 멧가비


하나다라는 이름의 킬러, 쌀밥 짓는 냄새에 세우는 기괴한 성벽(性癖)을 제외하면 어디 하나 빈틈 없어 보이는 정돈된 사내다. 하나다는 넘버 3를 자칭하고 있으며, 타겟의 보호라는 비교적 작은 임무에 가담하는 것은 마침 돈이 떨어졌기 때문이다. 쌀밥은 냄새만 맡지 도통 먹지를 않는다. 그는 이렇듯 자신의 욕망을 통제함으로써 생활과 세계관을 통제하는 안전제일주의 인물인 것이다.


세찬 비가 쏟아지는 어느 저녁, 하나다는 비 맞으며 처연하게 운전하는 여인 미사코의 차를 얻어타고 자신이 유부남이라는 사실과 별개로 그녀의 묘한 매력에 빠진다. 그에게 욕망이 생긴 것, 즉 자신 스스로가 그어 놓은 선을 한 발짝 넘은 것이다. 이 단 하나의 욕망으로 그는 그가 지켜오던 모든 것을 잃는다. 완전히 재단되었다고 생각하던 그의 세계관은 그렇게 스프링 하나 빠진 예민한 기계장치처럼 순식간에 마찰음을 내며 무너진다. 한 번의 임무 실패를 만회하려는 듯 연거푸 다른 암살들을 이어가지만, 이미 무너지기 시작한 모래성은 멈추지 않는 법이다.


아내의 배신, 조직으로부터의 추격. 그는 자신의 뒤를 쫓는 조직을 궤멸시키고 넘버 원마저 꺾어 정점에 선다. 하나다는 해체된 자신의 세계관 그 어느 분기점에서 "선택"을 한 것이다. 욕망을 자책하며 밀물 앞의 모래성처럼 그대로 흔적도 없이 지워질 것인가, 아니면 숫제 끝까지 갈 것인가의 사이에서 말이다. 답은 물론..


스즈키 세이준은 이 작품 이후 주류 영화계에서 밀려나 약 십 년의 침묵을 가졌다. 그만큼 영화는 난해하다. 해체된 몽타주의 빈틈들을 아방가르드한 미장센들이 채우고 내러티브는 분열적이다. 그러나 나는 이 근본 없는 구조가 마치 하나다라는 인물을 곧바로 상징한다고 해석한다. 영화가 본격적으로 분열증세를 보이기 시작하는 지점이 미사코의 등장과 맞물리기 때문이다. 즉 영화는 어느 킬러의 몰락 서사가 아니라, 어느 킬러의 혼란스러운 자아의 시각화 그 자체인 것이다.


아내가 배신하는 장면은 [토탈리콜]에서 비슷하게 재현된다. 물론 오마주라든가 하는 상관 관계가 공식적으로 언급된 적은 없다. 그런가 하면 이 영화의 기본 플롯에서 영감을 받은 게 바로 김지운의 [달콤한 인생]일 것이라고, 나는 생각하고 있다.







연출 스즈키 세이준
각본 키무라 타케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