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디오드롬 Videodrome (1983) by 멧가비


크로넨버그의 주 은유 대상이라면 대개는 에이즈, 매독 같은 것들이다. 더러운 성병이라는 공통점도 있지만 그보다는 당대에 공감 가능한 위협이라는 점, 그래서 크로넨버그의 공포는 늘 즉각적이고 직관적이다. 그러나 이 영화에 이르러서 크로넨버그의 인체변형 프릭쇼는 미래에 대한 불쾌한 예언서를 테마로 잡아버린다. 갑자기 미래를 이야기하기 시작한다.


사이버 네트워크라는 개념 자체를 쉽게 대중이 상상할 수 없는 시대였으니만큼 영화 속 공포와 저주의 매개체는 비디오 테이프로 표현되지만, 영화가 비디오와 그 비디오에 탐닉하며 괴물이 되어가는 인간들을 통해 묘사하는 지옥도는 딱 지금의 인터넷 문화 군상에 적중하고 있다는 것이다. 말초신경(과 이상성욕)을 자극하는 시청각 매체에 빨려들듯이 집착, 현실의 것과 가상의 것 사이의 경계를 수용자 스스로 허물고 그것들을 구분하기를 포기해버리는 꼴, 이거 딱 지금의 모습이다. 더 포괄적으로는, 오래 전부터 인터넷 공간에서의 윤리적 아노미에 대해 경고해왔지만 전혀 자정되지 않은 채 여기까지 와 버린 사이버 네트워크의 역사 자체다.


정도의 차이일 뿐 인간이라면 누구에게나 불쾌한 욕망이 있을 것이다. 영화는 비디오 테이프라는 매체를 통해 그것을 완전히 해방해 인간이 인간으로서 사회적 기능할 수 있는 가이드라인을 무너뜨리고 리비도 그 자체의 화신 쯤의 무언가로 타락해가는 인간을 그린다. 단순히 현실과 비현실의 혼돈을 표현한 이야기라면 흔하지. 하지만 여기서 크로넨버그는 신체 기관이 다른 무언가로 점차 변해가는 인간들을(그의 영화 사상 가장 노련한 아날로그 특수효과를 통해) 등장시킴으로써, 인간이 인간성을 잃어가는, 인간성보다 다른 무언가를 더 탐닉하게 되는 물신주의적 현상을 적나라하게 꼬집는다. 너무나 적나라하기 때문에 오히려 난해하기 느껴지는 기현상마저 벌어진다.


그러나 영화가 보여주는 온갖 그로데스크한 이미지들과 파국의 전개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지금의 현실보다는 낙관적으로 보일 수 밖에 없다. 영화 속 인물들은 욕망을 해방함에 있어서 오로지 개인적인 차원을 벗어나지 않지만, 현실의 가상 세계 괴물들은 익명성을 이미 가졌음에도 또 다른 익명들로 이뤄진 집단 안에 숨는다. 크로넨버그 할배가 미래인간들의 비겁함 까지는 꿰뚫어 보지 못 한 것이다.






연출 각본 데이빗 크로넨버그


---


상관 없는 얘기지만, 영화에서는 인간과 물질의 경계가 사라지는 미래에 대해서도 논한다. 이것은 신체 기관 일부를 기계로 대체한 사이보그와는 다른 개념이다. 사이보그는 그 단어가 주는 미래적인 뉘앙스와 달리 이미 우리 삶의 평범한 일부가 되어있다. 크로넨버그가 말하는 것은, 물질(로 은유된 다른 무엇)을 신체 안에 삽입함으로써 인간이 인간 본질을 잃어가는 현상을 경고하는 것이다. 그것과 완전히 같지는 않지만 비슷하다고는 할 수 있는 어느 영화 캐릭터가 있다. 기계 장치를 몸에 두르는 것으로 시작해 결국에는 몸 안에서 기계를 뽑아내는 지경에 이르른 그의 이름은 토니 스타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