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계태엽 오렌지 A Clockwork Orange (1971) by 멧가비


'스웨이드 헤드'라든가 '스무디' 등 아무튼 6, 70년대 반사회적 집단에게서 모티브를 따온 듯한 네 명의 거리 폭력배. 일단 영화의 발단은 통제불능의 청소년 범죄에 대한 사회고발처럼 운 띄워진다. 일본 만화에도 자주 등장하는 "노인 사냥" 같은 짓을 일삼는 '알렉스 드 라지' 일당이 그 주인공.


알렉스 역을 맡은 말콤 맥도웰은 당대 가장 낭만적이고 아름다웠던 뮤지컬 넘버를 흥얼거리며 처음 본 유부녀를 강간한다. 빌어먹게도 그게 이 영화에서 가장 유명한 장면 중 하나다. 역설적으로 작품의 주제의식과도 가장 밀접한 장면이 아닐 수 없는데, 영화의 전반부는 단순히 폭력을 위한 폭력, 그런 순수한 것이 아닌, 무언가를 짓밟고 더럽히고 싶어 행하는 악질 폭력을 논하고 있기 때문이다.


베토벤을 즐겨 들을 정도로 예술적 감수성이 있는, 즉 나름대로의 탐미주의가 있는 인물임에도 "Singin' in the rain"을 부르며 무자비하게 강간하고 때리는 아이러니한 잔인함. 여기서 생각해봐야 할 것은 알렉스가 드러내는 폭력성의 근원이다. 그는 어떤 종류의 악인이냐에 대한 것 말이다.


알렉스는 보편적인 의미의 "악인(惡人)"이라기 보다는, 구순기적 윤리 아노미 상태에 있는, 도덕적 개념이 확립되지 않은 인간에 가깝게 묘사된다. (마약을 탄) 우유, 기저귀 모양의 유니폼, 남근 형태의 장식품을 갖고 노는 모습들에서 알 수 있다. 즉 몸만 자란 반쪽 짜리 어른인 건데, 감옥에 다녀온 후 "직업을 가진" 옛 부하들로부터 린치를 당하는 장면에도 역시 그와 같은 함의가 있을 것이다.


알렉스의 부하들이 경찰이 된 점 의미심장하다. 사회정의에 대한 철학적 검증 과정 없이 그저 폭력을 폭력으로만 통제하려는 사회에 대한 은유 되겠다. 즉 민간의 폭력을 사회 시스템이 재생산하는 구조라는 거지. 알렉스라는 캐릭터의 악행을 두둔할 일은 아니지만, 어쩌면 알렉스와 그 일당들은 사회가 만들어낸 괴물일지도 모른다는 해석. 그런 잔인한 범죄자에게 가해지는 다분히 파쇼적인 제재는 옳은 것인가, 하는 것이 중후반 이후부터 영화가 던지는 질문이다.


개인의 비윤리와 폭력을 개인의 책임만으로 볼 것인가 사회 구조의 근본적인 종양으로 간주할 것인가. 범죄자의 폭력에 대한 욕망을 약물과 신경조작으로 통제하는 것은 합당한가.


...라고 하는 게 알렉스가 출소한 이후부터 영화에 깔리는 뉘앙스다. 혹은 정서적으로 건강한 사람이 내릴만한 정석적인 해석이기도 하겠지. 하지만 내가 이 영화에 소름이 돋는 건, "나쁘지 않은데?"라는 생각이 드는 순간 부터다. 영화 속 통제 기술은 나름대로 합리적이다. "빅 브라더"처럼 감시하는 것도 아니고, 좆같은 깡패 범죄자 새끼들이 좆같은 짓 못 하게 막을 뿐이라면 그만한 방법도 없지 않냐는 거다. 물론 고문과 세뇌에 가까운 그 시술 과정 자체에는 문제가 있따. 그러나 폭력성이라는 본성을 통제할 수 있을 정도의 기술력이라면 그에 이르는 과정 역시 개선할 가능성이 있을 것이다. [슈퍼맨 레드 선]에서는 사회주의에 저항한 시민들의 머리에 숫제 칩을 박아버려 노동력으로 뺑뺑이를 돌리는데, 이 영화의 통제 방법이 그 정도로 인권을 유린하는 건 아니잖나.


나는 디스토피아 영화들을 좋아한다. 영화 속 뒤틀린 세계관과 파시즘이 까부숴지는 모습에서 카타르시스를 느끼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째선지 이 영화에서만큼은 체제의 편을 들게 된다. 그만큼 주인공 알렉스 드 라지를 좆같은 씹쌔끼로 훌륭히 묘사했다는 거겠찌. 부모마저 포기한 새끼니 오죽하랴. 이래서야 영화가 어느 쪽으로의 메시지를 주려던 건지도 헷갈린다.


영화 속 정부 시스템은 단편적으로나마 묘사되는 것만 봐도 이미 아사리판이다. 재소자를 교화한다는 의도는 좋다만 그 방법이 지나치게 가학적이고, 이후에는 빼앗았던 폭력성을 정치적인 목적으로 너무나 간단히 되돌려준다. 그 루도비코 요법이라는 건, 저 정도 되는 개판 오분 전 세계관에서나 나올 만한 물건이겠지. 폭력과 범죄라는 게 사라지지 않는 이상, 영화가 던지는 고민거리는 영원히 유효할 것이다.


알콜중독 부모 밑에서 자라 학창시절에는 폭력의 피해자이기도 했다는 말콤 맥도웰, 어떤 심정으로 알렉스를 연기했을까.





연출 스탠리 큐브릭
각본 스탠리 큐브릭
원작 앤서니 버제스 (동명 소설, 196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