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셋 대로 Sunset Boulevard (1950) by 멧가비


그건 사랑이었을까. '노마'가 '조'에게 그토록 집착했던 건 그의 말처럼 정말 사랑이었을까. 혹은 죽은 애완 침팬지를 대신할 말 하는 액세서리가 필요했던 걸까. 아니면 안 팔리는 작가라도 헐리웃 비즈니스와 희미하게는 연결고리가 있는 사람을 곁에 둠으로써, 미이라처럼 산 것도 죽은 것도 아닌 자신의 옛 영광에 수분을 공급할 요량이었던 건 아닐까.


'베티'는 '조'를 사랑했을까. 무생물, 무형물에 대한 보상 없는 열정이 가끔 그것을 떠올리게 하는 어떠한 사람에게로 향하기도 하듯, 베티가 꿈꾸는 이상적인 작가주의에 조가 가장 근접했을 뿐이진 않을까. 헐리웃 비즈니스에 이제 막 입성한 신출내기에게, 성실하고 안전한 약혼자 대신 즐기는 밀회의 스릴이 필요했던 건 혹시 아닐까.


'조'는 '베티'를 사랑했나. 어쩌면 그의 말처럼 과거의 자신과 닮은, 재물이라는 감옥에 갇히기 전 시네마에 대한 순수한 열정 뿐이었던 자신의 모습이 그리웠을 뿐인 비루한(自己愛) 자기애였을 뿐이진 않나.


'맥스'는 '노마'를 사랑했던가. 그게 아니라면, 한 시대가 저무는 헐리웃에 자신이 치열하게 존재했었노라는 증거로서 한 명의 배우를 박제시켜 곁에 두기 위해 무슨 짓이든 마다하지 않았던 맥스야 말로 광인은 아니었던가.



그것들은 정말 사랑이라 착각한 다른 무언가였을까. 아니면 "그런 사랑"이라는 것도 있을 수 있다고 그들을 동정함이 옳은 걸까.



불완전연소된 사랑은 자의식 안에서 부풀어 집착으로 변질된다. 흔히 이루지 못한 첫사랑의 기억이 세월이 지날수록 머릿속에서 더욱 미화되듯이 말이다. 찬란했던 배우로서의 열정을 채 완전히 쏟아붓지 못하고 토키 영화라는 신 조류에 휩쓸려 영화계에서 별안간 밀려나버린 노마에게 영화란, 영화 속에서 빛나던 자기 자신이란, 그런 의미에서의 못다한 첫사랑이었는지도 모르겠다. 타협과 타락이라는 감옥에 갇힌 조를 중심으로 서술되는 영화지만 사실은 노마부터가 자기애라는 감옥에 이미 종신형 선고 받아 갇혀있었던 거지.


개인적으로는 조의 운명론 같은 타락이나 노마의 비극적인 광기보다, 테이블에 앉아 태연히 카드 게임이나 하고 있던 버스터 키튼의 능청스런 모습에 더 마음이 쿵 하고 내려 앉는다.






연출 빌리 와일더
각본 빌리 와일더, 찰스 브래킷


---

최동훈 [타짜]의 "쏠 수 있어" 장면이 이 영화에서 힌트를 얻었을 거라고 나는 예전부터 믿어 의심치 않는데, 그 얘기를 하는 사람이 정말 아무도 없다는 점이 의아하다.




비정기 한 마디

"다시 보고싶다 오렌지캬라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