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 열쇠를 빌려드립니다 The Apartment (1960) by 멧가비


주인공 버드의 최대 고민은 퇴근 후에도 집에 들어가지 못한다는 단순한 차원의 것이 아니다. 퇴근 후의 아파트를 직장 상사들이 무슨 모텔 대실처럼 불륜의 현장으로 사유화 한다는 건, 결국 퇴근해도 직장생활의 연장이라는 뜻이다. 퇴근해도 퇴근하지 못하는 말단 회사원의 고충. 이 점만은 오히려 현대 동아시아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하겠다.


그렇다고 영화가 미래지향적인 사회비판인가 하면 천만의 말씀. 영화의 플롯은 알고보면 너무나 야생과 닮아있다. 주인공은 상위 포식자들에게 영역을 빼앗기기만 하는 먹이피라미드 하층의 호구다. 인사고과 한 줄 받아보려던 아둔한 여우의 인생 헌납은 결국 사바나 통인 코끼리의 눈에 띄이기에 이르고, 결국 사자 표범한테 백날 갖다 바치는 것보다 코끼리 똥구멍 한 번 닦아주는 게 빠르다는 진리를 깨달으며 그토록 원하던 승진을 얻어낸다.


그러나 아뿔싸, 여우가 호시탐탐 군침 흘리던 신포도는 알고보니 이미 코끼리의 것이었구나. 탐욕스런 코끼리에게 여우가 내어준 건 아파트가 아니라 사실은 포도밭이었으니, 승진도 뭣도 공허할 뿐. 만고불변의 진리, 호구는 자신이 호구인 걸 인정하기 전 까지는 절대 호구 신세를 면치 못한다. 호구잡힌 나와바리에서 떠나지 않으면서 호구를 면하는 건 더욱 어렵다.


빌리 와일더의 가벼운 소동극 코미디 중 하나이니만큼 결론적으로 호구는 포식자들에게 엿을 날리고 호구에서 벗어난다. 메데타시 메데타시. 어렵게 승진한 직장 잃고, 좋은 이웃 있는 아파트도 떠나고, 불륜의 한 축이던 부도덕한 백치 미녀도 얻었으니 참말로 행복하게 잘 살았답니다, 끝.






연출 각본 빌리 와일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