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씨 451 Fahrenheit 451 (1966) by 멧가비


프랑수아 트뤼포가 생각한 디스토피아는 여러가지 의미로서 독특하다. 다분히 말장난에서 착안했을 'Fireman'들은 불을 끄는 대신 불을 지르는 게 업무인 사법기관 공무원들인데, 그들이 불질러 태우는 대상은 제목처럼 451도에서 발화한다는 물건, 책이다. 영화 속에는 그 어떤 "허가된" 활자가 등장하지 않는다. 주인공 몬태그가 읽는 만화에는 말풍선이 없으며, 숫제 영화 자체도 오프닝 크레딧을 생략하고 나레이션으로 스탭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읊는 지경이다.


독특하다 한 것은, (유대인들을 잡아갔던 식민지 프랑스에서의 나찌들처럼) 책이란 책은 걸리는 족족 불태워버린다는 어느 디스토피아를 그리고 있지만, 또 여느 디스토피아처럼 (빅 브라더 등의) 파시스트의 존재나 그 숭악한 국가적 분서갱유의 뚜렷한 목적은 달리 언급되질 않는다는 사실이다. 파시즘의 하수인에 지나지 않을 파이어맨들의 언급이나 태도, 이미 우민화 되어버린 시민들의 반응 등을 종합해 결론 내리자면, 저 세계관에서는 그저 똑똑한 게 싫은 거다, 생각을 많이 하는 것이 싫고, 어쩌면 생각이라는 것에서 발생하는 분쟁을 차단해 평화를 유지한다는 발상인지도 모르겠다. (이 영화의 장르적 후손인 [이퀼리브리엄]이 감정을 통제하는 것과는 비슷하지만 전혀 다르기도 하다.)


반지성주의자들이나 할 법한 발상이다. 앞서 말했듯이, 저 파시즘의 중심 권력자는 등장하지 않는다. 그건 즉, 우민화를 통해 그 이상의 무언가를 획책하려는 야심 같은 것은 관계 없다는 소리. 어떤 의미로는, 누군가에게는 유토피아이기도 한 세계관일 수 있다는 것이다. 생각하는 게 귀찮고, 나보다 똑똑한 누군가에게서 한 마디 듣는 게 싫은 사람에게, 생각 없이 그저 돈이나 쓰면서 사는 것을 미덕이라며 국가가 적극 장려하는 세계관이란 유혹적이지 않을 수 없겠지.


여기서의 의문은, 그 어떠한 지성 없이 돌아가는 국가 운영이란 대체 어떻게 생겨먹은 거냐 하는 점. 활자 한 줄 없이 나라 하나가 저렇게 멀쩡히 굴러간다고? 그런 거 신경 쓰지 말고 이 쯤에서 웃으면 되려나. 그런 거 생각하지 말라고 파이어맨 여러분들이 어제도 오늘도 불철주야 방화에 힘쓰신다니 말이다. 이래서 예술 영화는 B급 코미디와 언제나 깻잎 한 장 차이다.


디스토피아에 대한 저항의 한 줄기 빛으로 끝맺는 많은 영화들 중 그 엔딩이 가장 시적으로 아름답다. 책을 가질 수 없다면 인간이 책을 대신한다. 지성을 배척 말라. 사람이 곧 지성이다.






연출 프랑수아 트뤼포
각본 프랑수아 트뤼포, 장 루이 리샤르, 헬렌 스콧
원작 레이 브래드버리 (동명 소설, 19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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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解明 2018/11/28 11:35 #

    영화가 소설 원작에 미치지 못하는 부분이 많은데, 언급하신 대로 결말에서 보여 준 풍경 하나만으로 원작을 압도할 만한 힘을 얻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 멧가비 2018/11/29 02:45 #

    서사보다는 이미지에 집중하는 누벨바그적 특징이 그대로 반영돼서 괴상하지만 매력있는 실사화가 됐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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