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놈 Venom (2018) by 멧가비


본래가 스파이더맨에 대한 안티테제이자 네거티브 카피로 태어난 캐릭터. 즉 태생부터 스파이더맨 서사를 빼면 베놈이라는 이름과 껍데기만 남을 수 밖에 없는 캐릭터다. 물론 베놈의 이야기를 하는 데에 반드시 스파이더맨이 필요한 건 아니다. 껍데기만 남으면 알맹이는 오리지널로 채우면 되지. 어째서 스파이더맨과 비슷한(?) 외모를 가지고 거미줄 비슷한 점액질 촉수를 뿌려대는지 등은 설정 몇 줄 바꾸거나 그냥 시치미 떼도 될 일.


그러니 스파이더맨 없는 스파이더맨 영화를 만들기로 했으면 확실히 선을 그었어야 한다. 그러나 스파이더맨 없이 태어난 우리의 뉴 베놈은 마치 스파이더맨을 대체하기 위해 붙들려 와서 제작진이 던져준 대본을 마지못해 읽는 꼭두각시 같다. 증오와 집착의 화신에게 주어진 게 루저였던 과거라니, 그딴 구린 커밍아웃 저리 치우고 입 다물라고. 숙주 인간과의 버디 무비는 또 뭔데, 제작자 아비 아라드의 베놈에 대한 집착은 결국 스파이더맨을 대신할 SF 마동석을 찾는 거였나. 피터 파커가 거미한테 물린 설정을 차마 포기할 수 없어서 베놈이 인간한테 물린 거야? 위압적인 피지컬, 반사회적인 세숫대야, 선홍빛 혓바닥 날름날름츄릅. 세상 숭악한 외모로 어찌어찌 하다보니 결과적으로 영웅적인 일을 하게 됐는데 그 방법적인 부분에선 윤리 평가 보류. 이런 거 만들려던 거 아니었어? 베놈으로 영화 만든다면 그런 거 기대하는 게 잘못한 건가?


차라리 이야기에서 베놈을 인간 여자로 치환하면 이야기의 일부가 오히려 자연스럽다. 앤 입장에서는 구남친이 폐인이 되다 못해 어디서 나타난 고스 약쟁이 여자랑 뒹굴고 있는 걸 도저히 두고 볼 수가 없는 거지. 그런 스토리면 오히려 덜 지루했을 것 같다. 사실 이게 무슨 말이냐 하면, 영화가 에디-베놈의 버디 코미디와 에디-앤의 로맨스 사이에서 갈피를 못 잡고 두 쪽 다 집중을 못 한다는 소리다. 베놈이 에디와 완전 결합하는 건 영화가 시작한지 한 시간 정도 됐을 때 부터니 전체적인 구조도 집약적이질 못하고, 액션의 대부분이 밤에만 진행되는 건 시대 역행이다. 슈퍼히어로 장르의 현재 트렌드세터인 MCU 영화들 중 페이즈 2 이후 걸작들이 대부분 환한 볕 아래에서 깨고 부수고 한다는 점 전혀 눈치채지 못한 건가. 임무 실패는 즉결 처형으로 답하는 70년대 악당 까지 기어나오고 자빠졌어.



종합. 베놈 캐릭터의 의도나 목적이 불분명하고 개성 없으며, 악당이 너무 촌스럽고 영화의 템포가 낡았다. 귀엽다는 평 많던데, 베놈이 귀여우면 안 될 거 없지만 귀여운 영화 만들 거면 뭐하러 베놈을 갖다 쓰나. 베놈이 어느샌가 안티 히어로같은 식으로 이미지가 많이 희석 됐던데, 적어도 내가 한참 코믹스 볼 때는 얘는 그냥 순수한 악이었단 말이지.


이 영화가 버디 무비의 형식을 갖춤에 있어서 베놈을 루저로 규정지은 부분이 특히 나쁜 이유는, 에디 브록 까지 루저로 낙인 찍힌다는 점이다. 거대한 사회 악을 고발하려다가 좌절한 몇 안 되는 옳은 언론인들이 실제로 존재하는 이상 에디에게 루저라는 프레임을 씌워서는 안 되는 거다.






연출 루벤 플라이셔
각본 켈리 마르셀, 윌 빌, 스캇 로젠버그, 제프 핀크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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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디오 시리즈물로 지겹게 우려먹어졌을 가능성이 높으니 다행이라면 다행이고, 모든 스파이더맨 팬들의 주적이자 애증의 대상인 아비 아라드의 부재에 감사하는 바이다. 실사로 [베놈] 같은 거 무리하게 만들지 말고 이 세계관 안에 베놈 및 심비오트들도 투입했다면 더 좋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물론 그랬다면 심비오트 성애자인 아라드가 손 ... more

덧글

  • IOTA옹 2019/03/16 12:14 #

    좋은 인생 되셨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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