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파이더맨 뉴 유니버스 Spider-Man: Into the Spider-Verse (2018) by 멧가비


MCU 이래 붐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슈퍼히어로) 팀업 포맷으로 나온 또 하나의 영화. 그러나 이 영화가 MCU의 방식과 결정적으로 달느 건 "평행우주" 소재를 과감하게 갖다 쓴다는 점. 굳이 디즈니-마블의 [어벤저스]를 비교 예시로 들자면, 사실은 각자의 세계관이 견고하게 있을 캐릭터들을 한데 모음에서 오는 핍진성의 구멍을 영화적(문학적 혹은 엔터테인먼트적) 허용이라는 이름 하에 시치미 떼고 모른 척 하느냐 아니면 그것을 인정하느냐의 차이가 있을 것이다. 이 영화는 천양지차로 다른 내력을 가진 캐릭터들의 집합이라는 부분을 인정하는 것을 넘어 오히려 그것을 작품만의 고유한 매력으로 적극 활용한다. 너무나 다른 캐릭터들이 모여서 팀을 이루려면 그 당위성 때문에라도 각자의 개성을 죽이고 팀웍을 강조할 수 밖에 없지만, 각자가 어딘가에서의 "스파이더맨"이라는 공통분모를 갖고 모인 캐릭터들은 오히려 반대로 같음 속에서 다름이 더 부각된다.


이는 실사영화에서였다면 다소 부담스럽거나 장황하게 풀렸을 "평행우주"라는 소재가, 애니메이션 환경에서는 얼마나 간편하고 자연스럽게 쓰일 수 있는지에 대한 실험적 증명이다. 여태까지는 픽사의 [인크레더블]이나 월트 디즈니의 [빅 히어로] 등 단발성 텍스트로만, 혹은 [레고 배트맨 무비]처럼 너스레 위주인(정통이 아닌) 메타픽션을 통해서만 구현됐던 "슈퍼히어로 애니메이션 영화"의 시장 가능성을 정석적인 스토리와 정통성 있는 캐릭터로 증명해낸 점을 높이 사야한다. 1993년작 [배트맨 환영의 가면]의 예가 있지만 어디까지나 TV 시리즈의 연장선이었으며 극장 성적은 처참했다.


여느 장르 영화인들 아니겠냐만, 특히 이번 스파이더맨 영화는 이 한 작품에 도달하기 까지의 장르 역사를 훑는 것이야 말로 특별히 유의미한 일일 것이다. 우선 본작은 마블 코믹스의 세계관 중에서도 메인 우주라 할 수 있는 '지구 616'을 벗어나, 그에 대한 어쩌면 안티테제이기도 한 '지구 1610' 이른바 '얼티밋 유니버스'를 근간으로 삼고 있다. 가깝게는 MCU 영화들 역시 얼티밋 유니버스에 많은 모티브를 빚지고 있다. 소니는 [어메이징 스파이더맨] 시리즈의 실패로 디즈니-마블의 세계관에 스파이더맨 캐릭터를 위탁시키는 선택을 하게 되고, 이는 즉 소니 제작의 실사영화 세계관에서의 "스파이더맨 부재중"이라는 결과를 낳는다. 한 쪽에는 호재이며 다른 한 쪽에는 울며 겨자 먹기. 이렇듯 일종의 차선책으로 태어난 의외의 걸작이라는 점에서, 십여년 스파이더맨 영화를 만들어 온 소니 픽처스의 내공을 새삼 실감하게 된다. 아직 안 죽었어.


평행우주의 스파이더맨이 집결한다는 플롯으로서는 2014년에 댄 슬롯이 스토리를 쓴 코믹스 [스파이더버스] 연작을 사실상의 원작으로 간주해도 되겠지만, 볼 사람만 보는 코믹스를 제외하더라도 이미 TV 애니메이션 시리즈 중 94년작 [스파이더맨 TAS], 2014년작 [얼티밋 스파이더맨] 등을 통해 라이트 팬들에게도 꽤나 익숙한 설정일 것. 2010년에 출시된 비디오 게임 [섀터드 디멘션즈]는 짐작컨대, 본작의 가장 직접적인 참고서 중 하나일 것이다. 특히 [얼티밋 스파이더맨] 시즌3의 평행우주 연작은 이 영화와 구성마저도 상당히 유사하다. 또 하나의 원작이래도 무방하겠다.


조금 거슬러 올라가서, 2003년에 나온 13부작 애니메이션 [스파이더맨 NAS]는 최초로 스파이더맨을 카툰 랜더링한 3D 애니메이션 작품이다. 닐 패트릭 해리스가 피터 파커 역으로 목소리 연기한 이 시리즈는 길지 않은 분량에 이후로도 잘 언급되지 않는 비운의 작품이나, 당대에 해당 작품을 접한 사람들 사이에서는 상당히 호평 받은 바 있다.


뒤이어 2005년에는 비디오 게임 [얼티밋 스파이더맨]이 출시된다. 마일스 모랄레스라는 캐릭터가 아예 등장하기도 전이니 당연히 피터 파커를 주인공으로 하고 있으며 얼티밋 코믹스의 스토리 일부를 바탕으로 베놈, 일렉트로 등의 악당과 대결하는 오픈월드 방식의 게임인데, 비디오 게임으로서 코믹스의 작화를 거의 그대로 구현한 시각효과로서 선구자적인 시도가 있었다. 이 게임이야말로 오늘날 스파이더맨들을 떼로 모은 이 걸작 3D 애니메이션 영화가 탄생하는 데에 지대한 공이 있다.


이 영화가 많은 (너무나 많은 스파이더맨 영화, 그리고 과포화 상태의 슈퍼히어로 장르 때문에라도) 대중 관객의 시큰둥했던 예상과 달리 깜짝 놀랄 정도의 완성도를 가진 작품으로서 지금 세상에 선보이기 까지의 과정을 훑어 보며 흥미로운 건, 하나의 걸작이 탄생하기 까지 직간접적으로 관여하거나 영향을 끼치는 레퍼런스들을 읽어내는 일련의 작업이, 여타의 다른 작품들에서의 그것과는 판이하게 성격이 다르다는 점이다. 스파이더맨 극장 영화 하나가 이룬 완성도의 맥락을 짚는 레퍼런스 리스트에, 오로지 스파이더맨 관련 작품들만이 이렇게나 풍부하게 포진해 있다는 사실. 마치 스파이더맨이라는 캐릭터만 존재하는 어떤 다른 우주에서의 일인 것처럼 말이다. 이제 스파이더맨이라는 캐릭터는 그 캐릭터가 가진 텍스트적 자생력이나 모티브적 파급력으로는 '프랑켄슈타인의 괴물 ', '드라큘라 백작' 등 고전 소재들의 위상을 바짝 추격하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 마저 들 정도다. 



상기했다시피 MCU라는 타 회사 시리즈물의 존재, 그리고 그 상업적 성공이 이 영화의 탄생에 대해 미필적고의로나마 영향을 준 것이 사실이며, MCU의 성공 이면에는 얼티밋 코믹스의 다소 무게감 있는 설정을 채택한 혜안이 있다. 그리고 얼티밋 코믹스 세계관과 실사 영화 비즈니스 사이의 가장 큰 연결고리인 사무엘 L. 잭슨의 존재를 잊어선 안 될 것이다. 그렇구나, 이 영화의 근본에는 결국 욕쟁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이 있었어.


후속작은 뭐 당연히 나올 분위기다. 이게 디즈니 산하의 작품이었더라면 비디오 시리즈물로 지겹게 우려먹어졌을 가능성이 높으니 다행이라면 다행이고, 스파이더맨 팬들의 주적이자 애증의 대상인 아비 아라드의 부재에 감사하는 바이다. 실사로 [베놈] 같은 거 무리하게 만들지 말고 이 세계관 안에 심비오트들을 투입했다면 더 좋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물론 그랬다면 심비오트 성애자인 아라드가 손 놓고 보고만 있지 않았을 수도 있겠지만.


개인적으로는 늘 선호하지 않던 3D 애니메이션에 대한 관점을 바꾼 계기이기도 하다. 3D 랜더링의 차가운 질감은 무슨 수를 쓰든 셀 애니의 수작업 느낌, 스톱모션 애니메이션의 살아있는 "질감"을 이길 수 없다고 늘 생각했거든. [토이 스토리] 시리즈에서 대단한 기술로 먼지를 구현했네, 털을 수천 가닥을 모델링했네 하며 과시해댄들, 그로밋의 머리통에 우연히 찍힌 아티스트의 지문 하나보다도 못하다고, 어찌보면 편향된 취향을 고집했던 게 사실이다. 그러나 이 영화에 이르러, 아니 사실은 픽사의 [인사이드 아웃] 부터 슬며시 느끼기 시작한 거지만, 3D 랜더링도 (비록 진짜의 흉내라는 한계는 벗어날 수 없을지언정) 충분히 시각 예술로서 수작업 회화만큼의 감흥을 줄 수도 있다고 믿게 됐다. 그걸 인정하기 까지 꽤 오래 걸린 셈이다.


여담인데, 스파이더햄을 극장에서 볼 수 있을 거라고는, 그 오랜 스파이더맨 팬질을 하는 동안 정말 단 한 번도 상상해보지 않았다. 마블의 [어벤저스]와 [시빌 워]에 이어, 이 슈퍼히어로 영화라는 것들이 한계를 비웃듯 저변을 넓히는 일에 이제는 익숙해져야겠다. 어쩌면 이러다 토에이의 특촬판 [스파이다만]과 레오팔돈이 나오는 블록버스터 극장 영화를 감상할 수 있는 날이, 오진 않을까? 에이 설마 거기 까진 아니겠지.






연출 밥 퍼시케티, 피터 램지, 로드니 로스먼
각본 필 로드, 로드니 로스먼


덧글

  • 로그온티어 2018/12/27 20:50 #

    ....셰터드 디멘션즈는 본 영화에 대한 참고서라고 보기엔 좀 무리가 있습니다; 그냥 스파이더버스의 본격적인 구체화를 촉발시킨 방아쇠로만 알아도 상관없을 듯요. 스파이더맨 빌런도 총출동 하는 와중에 마담웹이 등장하고 악당이 미스테리오인데, 모두 다 알고 있다는 전제하에 막 진행하는 게임이라 (...)
  • 멧가비 2018/12/28 11:03 #

    무슨 기준으로 참고서라고 했는지 쓰지도 않았는데 앞뒤 없이 "무리다"라고 일축하신 걸 보면 무슨 급한 일이 있으셨나 싶고ㅎ, 아니 애초에 스파이더버스 컨셉은 본문에도 썼지만 꽤 오래 된 거라 방아쇠 같은 것으로 어느 날 갑자기 튀어나온 게 아니에요. 시기가 비슷한 건 섀터드 디멘션즈 스토리를 쓴 사람이 스파이더버스도 집필했기 때문이죠. 해당 게임을 "참고서"라고 해석한 게 플롯 때문이 아니고요.
  • 로그온티어 2018/12/28 10:07 #

    제가 하고 싶은 말은 행여나 참고서라고 쓰니까 '봐야 더 이해가는 건가?' 라고 생각하실 분들이 있을까봐 쓴 겁니다; 악당총집합에 아예 평행우주를 직접적으로 다룬 작품을 낼 생각을 촉발시킨 작품이라고 생각하면, 팬이라면 한번 해볼만한 게임이 맞습니다. 하지만 아니라면 그냥 이런 게 있구나하고 알고 넘어가면 좋은 작품이다라고 쓰고 싶었어요. 왠지 혼란스러워 할 분들이 있을까 싶어 슬쩍 거론한 겁니다. 어차피 스팀조차 내려서 지금은 하기 어려운 게임이지만, 그래도요.

    그리고 저는 멧가비님의 본문을 읽었고 읽기전에 스파이더버스가 설정을 거론한 최초가 아니라는 걸 알고 있습니다. (뉴유니버스 시절엔 몰랐는데, 나중에 검색해보고 나서 알았어요.) 단지, 아예 주제로 삼은 작품은 저게 최초가 아닌가 하고 생각해보고, 거기서 본격적인 구체화라는 말을 쓴 건데, 아무래도 제가 단어 사용을 잘못한 것 같군요;
  • 듀얼콜렉터 2018/12/28 09:34 #

    개인적으로 정말 재밌게 봤는데 흥행이 좋지 않아서 안타깝네요. 후속작으로 여성캐릭터들 위주로 된 작품이 준비되고 있다고 하는데 별 문제없이 나와줬으면 좋겠습니다.
  • 멧가비 2018/12/28 11:04 #

    어? 이거 흥행 별론가요? 역시 웹상의 반응은 믿을 게 못 되나.. 후속작이 벌써 언급되고 있었군요. 여자들 이야기라면 실크가 나올 가능성이 높으니 꼭 나왔으면 정말 좋겠네요.
※ 로그인 사용자만 덧글을 남길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