렛 미 인 Låt den rätte komma in (2008) by 멧가비


흡혈귀에게는 언제나 노예가 있다. 있어야 그림이 그럴 듯 하다. 이엘리의 시종(Familiar) 호칸은 충성도에 비해 업무 처리 능력은 영 시원찮다. 나이 때문인지 원래 그런 건지는 알 수 없다.


늙고 지친 노예는 은퇴시키고 새로운 노예를 물색 중인 흡혈귀 여왕 앞에 칼잡이 꿈나무 소년이 나타난다. 마침 친구도 없는 것 같으니 회유하기 좋은 컨디션이다. 동백꽃 점순이 마냥 새침을 떨어주니 아니나다를가 저쪽에서 미끼를 덥썩 물어븐다. 노예의 기본 조건은 피지컬보다는 멘탈. 일단 쓸 데 없이 성가신 윤리의식은 없는 녀석이니 깡부터 길러준다. 알아서 체력단련을 시작하니 이 얼마나 기특한 노예 재목인가.


노예 쪽에서도 주인을 테스트한다. 제법이다. 들어오란 소리를 안 해? 감히 여왕으로 하여금 초대를 구걸하게 만들어? 여기서 목숨 건 베팅 들어간다. 온 몸으로 피 분수 쇼를 보여줌으로써 기선 제압하고 신뢰를 쌓는다. 노예는 자신이 노예의 길로 접어 들었음을 짐짓 알지만 벗어날 수 없다. 여왕의 비밀스런 흉터를 봤을 때는 뭐 이미 늦었지. 흡혈귀가 단순히 페로몬으로 노예를 끌어들이는 이야기야 흔하지만, 이렇게나 교활한 계획이라니, 부족한 피지컬 커버하고 얻을 것 최대한 다 얻어내는 이런 약삭빠른 흡혈귀-노예 로맨스는 본 적이 없다. 대단한 뱀파이어 호러다.


농반진반이 길었는데, 이 작품의 가장 중요한 가치는 현대의 창작물에서 관능, 액션, 표현주의 양식 등 익숙한 흡혈귀 레퍼런스들을 전부 배제하고서도 흡혈귀 이야기를 이토록 밀도 있게 풀어낼 수 있음을 증명했다는 점에 있겠다. 물론 그것들을 말 그대로의 의미에서 단 하나도 사용하지 않았다는 뜻이 아니니 정확히 다시 말하자면, 작품을 장르 기성품에 묶어 버릴 수 있었던 클리셰들을 "통제"하는 데에 성공했다는 말이다. 버린 척 잘 감춰서 뉘앙스만 노출한다는 소리. 관능이 왜 없어 있지. 주인공이 어린 아이들(의 외모를 한 인물)이라 물리적인 묘사가 없고 혹간 느껴지는 성적 긴장감을 관객도 한통속이 되어 애써 못 본 척 할 뿐, 이엘리와 오스칼 사이에 민감하게 흐르는 섹슈얼리티가 이 영화의 어쩌면 가장 큰 부분인데 말이지.


그러니까 그 지점에서 관객은 두 인물의 현재를 응원함과 동시에 미래를 염려하게 되는 것이다. 오스칼은 이엘리의 대등한 정서적 동반자로 거듭날 수 있을 것인가, 아니면 호칸처럼 노예가 되는 길을 스스로 걸어 들어간 것인가. 관객이 저 둘의 미래를 응원하면서 한쪽이 늙지 않는 요괴라는 사실을 자꾸 잊듯이, 소년 역시 이엘리의 흉터를 발견하고 빽도 하기엔 너무 많이 왔다는 것을 직감하면서 마음 속으로 아뿔싸를 외쳤던 건 아니었을까.






연출 토마스 알프레드슨
각본 욘 아이비데 린드크비스트 
원작 욘 아이비데 린드크비스트 (동명 소설, 2004)

덧글

  • 로그온티어 2018/12/28 11:18 #

    드디어! 제 주변에 이 영화를 단순 로맨스로 보는 분들이 많아서 그 사이에서 이건 노예물이라고! 외쳤다가 야동에 미친놈 취급을 받았었죠. 드디어 속을 긁어주는 리뷰를 보게 되는 군요. 다만 지금은 다른 의미로 로맨스로 볼 수 있을 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쩌면 [트와잇라잇]보다 더 진실된 뱀파이어 로맨스일 지도 모릅니다... 구울로 만든다는 요소를 뺴면 말이죠.

    [나를 찾아줘] 본 이후에는 이것도 결혼이다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
  • 멧가비 2018/12/29 13:12 #

    여기서 [나를 찾아줘]가 연결되다니,무릎을 탁 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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