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체스터 바이 더 씨 Manchester by the Sea (2016) by 멧가비


영화의 제목은 단순히 '지명'만이 아닐 것이다. '맨체스터 바이 더 씨'라는 마을 이름은, 모두가 자신을 알아보고 그 날의 일을 기억하고 있는 그 마을의 이름이란, 주인공 리에게는 다시 꺼내어 차마 정면으로 마주할 수 없는 죄책감의 거대한 덩어리 그 자체다.


형의 죽음은, 날이 채 풀리지 않아 당분간은 주검인 채로 냉동 닭 신세를 견뎌야 하는 형의 그 죽음은, 냉동 닭처럼 얼려 눈에 안 보이게 쑤셔 쳐박아두었던 리의 기억들을 억지로 꺼내어 강제로 해동해 버린다. 마음을 닫고 감정을 차단한 채 비루한 일상을 반복하던 리의 삶은 그것이 고통을 견뎌내는 방식이 아니라 그저 못 본 척 모르는 척 회피하는 방식이었기에, 이 날에 대해 전혀 대비할 수 없었던 것이다.


얼어붙었던 기억은 '맨체스터 바이 더 씨'에 도착하면서부터 하나씩 차례로 다시 리를 찾아온다. 고통스러운 삶에 하나 더 얹어진 것만 같은 짐짝처럼 조카 패트릭을 대하지만 사실은 조카를 사랑하기에, 아니, 형과 조카를 사랑했던 "기억"이 있기에 정말로 짐짝 치우듯 내팽개칠 수 있는 방법은 택하지 못하는 리.


욕정 왕성한 조카에게 대실 타임을 제공할 요량으로 의미없는 산책길에 시간을 때우려하면, 그 산책길에 별안간 전처를, 전처의 얼굴을 한 죄책감의 근원을 예고없이 불쑥 마주쳐버리는 도저히 달아날 곳이 없는 마을. 전처 랜디는 느닷없이 복받쳐 울며 리에게 사과한다. 이 지점에서 랜디가 리에게 사과할 어떤 일은 플래시백 되지 않는데, 이것은 사과라는 형태로 사실상 리를 용서했음을 의미한다.


리는 그 시점에서 더는 버티지 못한다. 어떤 죄책감은 용서받음으로써 더욱 구체적이고 날카로운 고통으로 다가오기도 한다. 도저히 돌파구를, 구원을ㅇ 찾을 수 없을 듯 커다란 죄책감은 용서 받으면 그 용서 받은후에 다가올 것들이 더욱 두렵다. 죄책감을 가진 사람들이 상대에게 용서 받으려는 이유는 그 후에 자기 자신을 용서하기 위함이다. 그러나 자기 자신이 절대로 용서할 수 없을 만큼의 죄책감을 안고 사는 이가 준비도 없이 상대로부터 불쑥 용서 받아 버린다면? 상대로부터 용서받지 못한다는 정신적 교착 상태에 간신히 의지해 버티고 있는 감각은, 그 죄책감의 주체 외에는 누구도 알지 못하는 것이다.






연출 각본 케네스 로너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