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미네이터 The Terminator (1984) by 멧가비


터미네이터라는 이름의 기게 부기맨은 린다 해밀튼이 연기한 "그 새라 코너"를 찾을 때 까지 같은 이름의 다른 사람들을 무표정한 얼굴로 수도 없이 죽여댄다. 우리에게 익숙한 귀신은 피해자가 언제 어느 곳에 있어도 "귀신같이" 찾아내 괴롭히곤 하는데 저 터미네이터란 놈은 그걸 못 한다. 이는 터미네이터라는 캐릭터가, 감각과 유연성 없이 프로토콜대로만 일을 처리할 수 밖에 없는 "도구"이기 때문이다. 새라 코너들은 새라 코너라는 익명성 아닌 익명성 때문에, 그들을 쫓는 기계 부기맨은 자의적으로 판단할 것을 허가받지 못했기  때문에, 기계적으로 죽고 살고 쫓긴다.


영화는 그렇게 아주 본격적으로 기계에 대한 공포를 위협적인 방식으로 관객에게 전달한다. 그러나 기계에 의해 인간이 영역을 빼앗기고 존엄을 잃는 공포는, 사실 잘 생각해보면 산업혁명의 시작과 함께 이미 존재했을 공포다.


영화가 나온 시점에서 관객은 인간과 기계가 엎치락 뒷치락 쫓고 쫓기며 벌이는 엔터테인먼트에 희열을 느낌과 동시에, 반대로 막연한 미래로부터 오는 공포감 역시 체험한다. 그러나 기계가 인간의 일을 대신할 수 있음을 누군가가 확신한 순간부터 (이 영화에서 묘사된, 마치 벡진스키의 어느 그림처럼 흉측한 시각적 충격은 아니었겠지만) 같은 종류의 공포가 이미 과거의 노동자들의 마음에서 자라나고 있었을 것이다. 즉 영화가 개봉했던 80년대는 과거 누군가가 두려워하던 디스토피아가 이미 도착해있는 시점이다.


관객은 이 영화를 극장의 영사기로, 가정용 VHS로 감상했지만, 영화를 상영하는 기계라는 것이 아주 오랜 옛날 직접 관객들 앞에서 재담을 늘어놓던 흥행사들을 사라지게 만든 역사가 있질 않은가. (그리고 이 영화의 후속작이 보여준 시각효과의 놀라움은 아마도 꽤 많은 특수분장사들의 일자리를 빼앗았을 것이다) 영화는 미래에 대한 불안한 예언이자 동시에, 과거에 존재했던 공포의 구전인 것이다.



카일 리스는 내가 헐리웃 영화에서 특별히 좋아하는 캐릭터 중 하나다. 병사를 자처하지만 어딘가 모르게 유약해 보이는 인상으로 저 험상궂은 슈월츠네거 로봇에 맞선다는 설정에서부터 이미 떨어지는 낙엽처럼 패배의 미학을 안고 시작한다. 사랑하는 여인을 지키기 위해 다신 돌아갈 수 없는 먼 길을 온 대찬 용사지만 가만히 살펴보면 이미 그 눈빛에 죽음에 대한 불안함이 서려있는 점이 카일 리스라는 캐릭터를 완성시킨다. 일면식도 없는 여자를 사랑하게 돼서 목숨을 걸었고, 정말로 목숨을 잃는다. 흔한 헐리웃 주인공처럼 결국엔 어떻게든 승리한다, 는 커녕 제대로 막타도 못 치고, 눈 뜨고 사망. 물론 그 반대편에, 아직 스타 비즈니스가 개입되기 전의 슈월츠네거가 작정하고 흰자위 희번득거리면서 연기하는 미친 살인 기계의 앗쌀함이 있었기 때문에 서로 시너지를 낸 거겠지. '아윌비백'도 좋지만, '우↗지 나인 밀리미다'를 시그니처 대사로 삼았으면 난 더 좋았을 것 같다.







연출 제임스 캐머런
각본 제임스 캐머런, 게일 앤 허드

핑백

  • 멧가비 : 이색지대 Westworld (1973) 2019-01-10 11:45:10 #

    ... 인간에게 반기를 든 노예 피조물이라는 설정으로는 [블레이드 러너]보다도 훨씬 앞서 있으며, 제임스 캐머런은 끝내 인정하지 않은 것 같지만 이 영화의 많은 부분은 [터미네이터]의 기초가 되었을 것이다. 또한 본작의 감독이자 각본가인 마이클 크라이튼은 아주 약간만 디테일하게 변주한 또 다른 공포의 테마파크 소설로 크게 이름을 날렸으니 ... more

덧글

  • 드미트리 2019/01/13 00:46 #

    좋은 영화였습니다. 2보다 1이 더 좋은 구성이었던 것 같습니다. 3편 이후는 망작....
  • IOTA옹 2019/03/16 11:58 #

    마이클 빈 아저씨는 전 더락 이후로는 못봤어요.
    크게 뜨진 못하셨지만 좋아했는데요..
    카일이나 힉스나 다 좋아하는 캐릭터였지요.
  • 멧가비 2019/03/16 12:05 #

    저는 플래닛 테러 이후로 출연작을 못 봤으니 10년 조금 넘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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