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미네이터 심판의 날 Terminator 2 The Judgement Day (1991) by 멧가비


거두절미하고, [에일리언 2]와 결이 같다. 예술성으로 더 평가받는 SF 호러 걸작 영화에 미사여구를 조금 더 보태어 최고의 엔터테인먼트로 승화시킨 후속작이라는 점. 한 마디로 고급스러운 사족. 둘 다 캐머런 영화지만 차이점이라면, 리들리 스콧의 매캐한 페쇄공포를 캐머런식으로 재해석했던 [에일리언 2]와 달리 이쪽은 전작도 캐머런의 이야기였다는 것. 세계관을 통제하기 더 쉬웠다는 이점이 있었겠으나, 이미 완벽히 끝낸 이야기에 사족을 붙여야 한다는 부담감이 더 컸을 것이다. 때문에 이 영화는 확장이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뒤집기"에 가깝다.


보호받는 대상이었던 새라 코너가 이제 아들을 보호해야 할 전사가 됐고, 여전히 무기질적인 표정의 터미네이터는 아군이 되어 깜짝 놀래키질 않나, 경찰 옷을 입은 작은 남자는 알고보니 훨씬 더 흉악한 신형 터미네이터라 이거지.


물론 단순한 플롯 뒤집기에 그쳤다면, 당시 캐머런이 인생 모든 재능을 다 쏟아부은 듯 보였던 그 화려한 기술적 연출들이 그저 공허한 시각 서커스에 불과했을 것이다. 그러나 뒤집힌 것들 중 가장 중요한 것은 역시 주제의식이다. 코너라는 이름을 미래 역사의 "키 퍼슨"이 자신에게 주어진 운명을 받아들이는 태도가 이 영화에 와서 뒤집어지는 것이다.


여기서 "운명"이라는 단어를 쓴다. 미래는 그저 위협적으로 등 뒤에서 다가오며, 현재는 살기 위해 더 빨리 도망칠 수 밖에 없는 직선적 구조의 추격전이 전작이었다면, 이제는 자신에게 주어진 상황 안에서 운명이라는 형이상학적 개념을 발견하고 그에 대해 사유함으로써, 미래와 현재를 포함한 비선형적 시공간 개념은 "선택"에 의해 그저 순응할 수도 아니면 적극적으로 개선할 수도 있는 무언가로 재해석 되어버리는 것이다.


전작에서 새라는 카일이 들려준 미래의 상황을 바탕으로 (미래를 상상하는) 악몽을 꾼다. 그러나 이 영화에서 새라가 꾼 악몽에는 익숙한 현재의 LA 그리고 자기 자신이 등장한다. 이것은 새라가 심판의 날과 관련한 모든 상황을 현재를 기준으로 받아들이게 됐으며, 다음 장면이 다이슨 저택 습격 시퀀스인 것 역시 언젠가 다가올 미래를 지금 바꿔야겠다는 의식전환을 했기 때문이다. 끝까지 철의 얼굴을 유지하던 터미네이터, 근성의 병사였던 카일 리스 그리고 도망자 새라 코너, 이 세 캐릭터가 영화 처음부터 끝까지 거의 같은 태도를 유지했던 전작과 달리, 이 영화에선 중심인물 셋 모두 성장을 한다.



T-1000은 SF와 호러 두 장르를 통틀어서도 손꼽힐만한 인상적인 악역이다. 어딘가 유약해보이는 외모인데도 오히려 거한인 슈월츠네거를 압도하는 모습은 역시나 전작에서 불쌍할 정도로 위기에만 몰려있던 카일 리스의 이미지를 "뒤집은" 것이다. 모습을 바꿀 수 있다는 설정은, 나를 죽이려는 게 누군지 모른다는 미지의 공포를, 이미 쫓기는 자들이 터미네이터의 존재를 알고 있는 이 두번째 영화에서도 여전히 써먹을 수 있게 만드는 영리한 장치다.


그러나 그보다 중요한 것은 그가 경찰 옷을 입고 있으며 일반 시민들을 대상으로 탐문을 하고 그들의 얼굴로 위장한다는 점이다. T-1000은 미래에서 온 로봇이라기엔 너무나 냉전 시대의 냄새를 강하게 풍긴다. 전작이 이미 냉전의 핵공포를 은유한 디스토피아를 간접적으로 다뤘으니, 이 영화의 T-1000은, 냉전은 종식되었지만 세인들에게 각인된 불안함은 (영화 당시) 여전히 유효했음을 뜻하는 기록과도 같다.







연출 제임스 캐머런
각본 제임스 캐머런, 윌리엄 위셔 주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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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IOTA옹 2019/03/16 11:55 #

    언제봐도 또보고 또 봐도 수십번 되집어 봐도 촌스럽지않고 재미를주며 감동도 줍니다.
    걸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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