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벤저스 엔드게임 Avengers: Endgame (2019) by 멧가비


비유하자면, 대홍수가 끝난 후 노아의 방주에서 내린 사람들의 이야기. 전작 [인피니티 워]의 초반 생텀 시퀀스는 마치 재난 영화의 불길한 도입부처럼 연출되었으며 이 영화의 초반은 그에 대한 후일담처럼 보인다. 재난 영화는 대개가 재난의 순간이 갖는 스펙터클함을 담는 데에 치중하며 재난 이후를 그리는 영화도 없진 않으나, 슈퍼히어로 영화에서 재난을 겪은 사람들의 그 이후의 삶을 이 정도로 아프게 묘사할 거라고 그 누가 예상했으랴. 아직도 '9/11'의 악몽을 떨치지 못 한 미국, 이젠 우리에게도 그러한 그늘이 있기 때문에 이 영화의 재난 후일담 파트가 결코 가볍지 않다.


많은 자체 오마주와 많은 수미쌍관, 이 영화가 전작들과 이루는 대구에 대해서는 이미 모두가 말하고 있으니 더 보탤 말이 없다. 그러나 말 하지 않고 넘어갈 수가 없는 것. 전작은 어벤저스의 타이틀을 달았으나 사실상 타노스의 영화였다는 것이 중론이다. 그러나 본작에 이르면 그 때의 타노스가 보여줬던 맬서스적 고민과 안타고니스트로서의 카리스마가 거짓말처럼 사라진다. 비통한 용사들의 복수 의지로 가득한 이번 영화에서 타노스는 그저 타도 대상인 비디오 게임 마왕일 뿐. '과거의 타노스'가 어벤저들에게 드러내는 밑도 끝도 없는 호전성은, 그가 지껄였던 장광설의 근본이 그저 비뚤어진 망상과 자가당착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음을 반증한다. 미친 부랄턱 망상가의 자기연민 텍스트는 끝났다는 뜻이다. 영화 두 편에 걸친 이런 칼 같은 태도 전환에 감탄한다. 우주 깡패의 가소로운 똥철학을 또 듣고 싶진 않았는데 다행이다. 복수도 두 번에 걸쳐 이뤄진다. 불문곡직 목을 베는 복수와, 당한 대로 똑같이 갚아주는 복수. 이 부분에 마블 스튜디오와 루소 형제의 귀신 같은 상업적 감각이 담겨 있다. 뭘 보고 싶어하는지 아는 거지.


루소 형제의 네 번째 마블 스튜디오 영화다. 액션에 대해 말해야겠다. [윈터 솔저]나 [시빌 워] 때는 자로 재고 저울로 계량한 듯한 액션 안무가 내러티브의 기승전결 구조와 톱니바퀴처럼 절묘하게 맞물렸지만 이번 영화는 구성이 조금 난잡하다. 어벤저들을 느닷없이 우주로 데려간 [인피니티 워]에서의 과학과 마법이 혼재하는 황홀한 다찌마와리, 이번 영화의 시각효과가 그걸 뛰어 넘은 것 같지는 않다. 하지만 이번에는 중요한 액션 씬 하나 하나에 찐득한 드라마가 담긴다. PTSD로 폐인이 된 토르가 망치를 다시 쥐며 자존감을 회복하는 모습은 귀여우면서도 짠하다. [시빌 워]에서 어벤저스가 해체되는 순간에 서로 반대편에 섰던 아이언맨, 캡틴 그리고 그 자리에 없었던 토르의 빅3가 타노스에 맞서 재결합 하는 감동. 언제나 약체였던 캡틴이 분연히 일어서 망치를 휘두르며 번개를 뿌려대는 순간에는 그 벅찬 카타르시스에 눈물이 찔끔 난다. 토르가 외친다, "그럴 줄 알았어!", 나도 똑같이 마음 속으로 외쳤다.



시간여행 파트는 명백히 [백 투 더 퓨처 2]를 떠올리게 하지만, 이 영화에서 인물들이 과거로 돌아가 과거의 자신을 훔쳐보는 장면에는 그 활극성 이외에 11년 마블과 함께한 관객들에게 각별한 의미가 있다. 마치 친구들과 모여 앨범을 뒤적이며 낄낄거리기도 하고, 또 어떤 사진엔 짓궂게 낙서도 슬쩍 해 보는 기분. 그리고 이어지는 성찬과도 같은 고급스러운 캐스팅. '저 사람이 저 분량으로 여길 또 나와?'라며 경악하게 만드는 대배우들의 특별 출연 릴레이에 괜히 내가 고맙다. 최고의 동창회다.


러닝타임에 비례해 늘어난 것은 코미디다. 마치 이별을 고할 예정인 연인이 마지막 자리에서 괜히 멋적은 농담이나 던지듯, 굵직한 인물들의 퇴장이 예견된 영화에서 오히려 개그는 더 많다. 타율이 높긴 하다. 거의 다 웃었다. 그러나 너무 많다. 그 중 30%만 걷어냈어도 관객 중 방광염을 호소하는 사람이 줄었을 것이다.


캡틴 아메리카의 마지막은 절반만 좋다. 데이트 약속을 결국 지켰다는 게 가장 대중 만족도에 부합하는 결말이겠으나, 나는 캡틴이 끝내 페기를 그리워만 하는 게 더 시적이라고 생각한다. 70년대 파트에서 국장이 된 페기를 아련히 바라보는 캡틴 몽타주는 그걸 위한 거 아니었나. 그 장면 까지 넣어놓고 굳이 해피엔딩이라니. 둘 중 하나는 빼야지. 내가 좋아하는 샤론을 빙다리핫바지로 만들어서 내가 이러는 게 맞다. 심지어 레이디 시프도 그냥 증발했어. 내가 좋아하는 여성 캐릭터들은 왜 다들..


몇 가지의 불만, 그걸 말 하는 것 조차 미안해지는 충분한 감동. 그게 결론이다. '스타워즈 세대'니 '해리 포터 세대'니 하는 것들이 있지만, [아이언맨]부터 시작된 이른바 '인피니티 사가'는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강제로 '마블 세대'로 묶어 버렸다. 그 대서사의 일단락 앞에서 그 이야기들을 사랑한 팬들에게 설정 오류니 과잉이니 하는 사소한 불만이 뭐 대수일까.







연출 조 루소, 앤서니 루소
각본 스티븐 맥필리, 크리스토퍼 마커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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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적으로, 리뷰 좀 그만 베껴 갑시다



덧글

  • 듀얼콜렉터 2019/05/01 04:54 #

    저도 개봉하자마자 이틀동안 세번이나 연달아 봤네요. 개인적으로 완벽한 영화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정말 팬으로써 최고의 선물이었습니다, 진짜 캡틴이 마지막에 이르러서야 묠니르를 잡고 드디어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그 유명한 대사를 말하는 부분은 정말 최고의 카타르시스 였습니다.

    캡틴의 결말은 캐릭터성이 좀 무너진 부분이 없지않지만 현실의 타협(배우의 계약이 끝난부분 같은)으로 인해 아쉽긴 하지만 어쩔수 없었다고 생각되네요.
  • 멧가비 2019/05/02 21:43 #

    어벤저스 어셈블도 그렇고, 은근히 에오울에서 넘어 온 요소들이 많더군요
  • 우르 2019/05/01 07:35 #

    다 좋지만 그저 마지막 전투의 그 한마디를 위해 11년을 기다렸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팬에겐 최고의 영화였습니다만.. 콜슨 좀 넣어주지.. ㅠㅠ
  • 멧가비 2019/05/02 21:44 #

    영화 팬들에게 콜슨은 그냥 죽은 사람이라 어쩔 수 없었겠죠. 그래도 자비스를 출연 시켜준 거 보면 드라마 팬들을 아예 외면하진 않은 것 같아서 기분이 좋았습니다.
  • 잠본이 2019/05/06 23:56 #

    이 포진으론 두번다시 만들수 없으니 보고싶은거 맘껏 질러버리겠다는 패기가 느껴지더군요.
    캐스팅도 거의 전쟁과 평화 스케일의 초호화... 그중엔 원경에서 한컷 나와버리는 사람까지도 (두둥)
    시프는 라그나로크 때 배우 스케줄만 아니었어도 어찌어찌 잘해볼만 했을텐데... 발키리가 맡은 역할이 사실 시프가 해도 이상하지 않은지라ㅠㅠ
  • 멧가비 2019/05/07 12:00 #

    대배우들 까메오 출연권 인당 하나씩 받아놨다가 한 방에 지른 느낌이더군요
  • 잠본이 2019/05/08 00:55 #

    주유소 포인트 차곡차곡 쌓아놨다가 영화관 예매할때 팍 지르는 (비유가 이상하다)
  • Soundwave 2019/05/13 19:34 #

    현재 시점의 타노스는 뭔가 그 느낌 그대로 죽게 냅두고 과거의 타노스가 메인 빌런을 맡은게 맘에 들더군요. 덕분에 어느 쪽이든 개연성이 살아서 좋았습니다. 마블영화 중에 막상 재밌게 본 거는 몇 개 없는데 그래도 20편이 쌓이다보니 캡틴이 어셈블 외칠 때 눈물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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