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파이더맨 파 프롬 홈 Spider-Man: Far From Home (2019) by 멧가비


우리 나이로 이제 고 1, 2 쯤 된 피터 파커는 마지막 소년기의 문턱에서 된통 성장통을 겪는다. 하룻강아지였던 자신을 더 큰 세상으로 데려가 성장시켜 준 멘토의 부재. 더 이상 가르쳐 줄 사람이 없다는 뜻이기도 하지만, 영원히 그를 뛰어넘을 수 없게 돼버렸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소년미 철철 톰 홀랜드의 두 번째 스파이더맨 영화는 아직 준비 안 된 성장과 독립을 강요받는 "소년기의 황혼"에 대한 이야기.


소년이 성인이 되어 더 이상 세상의 보호를 받지 못한 채 홀로 사회에 나가게 되면 어떠한 어른들을 만나게 된다. 윽박지르는 어른, 무책임한 어른, 속이는 어른. 이 영화에서는 각각 닉 퓨리, 학교 선생님들, 미스테리오가 그것들을 담당한다. 미스테리오는 정말 잘 속인다. 미스테리오는 속이는 재주 외에도 메타적인 면모 역시 갖춘 악당인데, 심지어는 지구 616 어쩌고 하는 약간의 코믹스 설정 까지 들먹이며 관객마저 속이려 든다. 토막적으로 코믹스 지식을 예습한 선무당 관객이 오히려 물기 쉬운 미끼.


미스테리오는 화려한 CG로 관객의 눈을 속이는 현대 블록버스터 영화에 대한 의인화이기도 하다. 그러니까 이번에 소년 피터는 영화 그 자체와 싸우는 것이기도 하다. 즉, 자신이 속한 근본적인 세계관에 대항하고 있는 셈이지. 미드-하이틴들이 대개 그러하듯이 말이다. VR이 완전히 대중화 된 현재의 세상에 10대를 보내고 있는 세대들이 특히 공감하기 좋은 설정이기도 할 것이다.


하지만 그 서사를 제공하는 미스테리오 본인은 썩 잘 만들어진 캐릭터는 아니다. 반전은 우습고 캐릭터성은 흐릿하다. 부와 명예만을 좇는 속물인 것 같으면서도 어느 순간에는 (비록 방법이 틀렸지만) 혼세에 대한 확고한 신념 같은 것을 품은 척도 한다. 어느 쪽인지 확실히 정하지 않는 각본 안에서 배우의 연기가 낭비된다. 특히나 마블 영화들은 대체적으로 주인공을 중심으로 흘러가기 때문에 악당은 심플하되 선명할 수록 캐릭터성이 빛난다. 그러나 미스테리오는 1편의 벌처와 비교했을 때, 어째 나올 순서가 바뀐 듯 오히려 2편의 악당인데도 튜토리얼 보스처럼 얇고 가볍기만 하다. 닳고 닳은 어른의 세치 혀로 소년을 농락한다는 설정은 좋으나 그걸 들고 나온 캐릭터가 텅 비어있다. 게다가 나는 WWF 세대라 그런지, 비주얼 사기꾼 보다는 완력파 악당이랑 주먹으로 치고 받는 게 더 좋더라.


피터의 심경 묘사는 조금 복잡하다. 풋내 날지언정 언제나 용감하고도 무쌍하게 덤벼 들던 피터가 이번엔 어째선지 매 순간 주저하고 한 발 물러선다. 스쿨버스에서 우주선으로 티머니도 안 찍고 과감하게 환승하던 그 닥돌러 피터가? 그토록 꼽사리 끼고 싶어하던 큰 물에서 제일 거물인 짹슨 형이 스카웃 하는데 그걸 마다해? 이것은 얼핏 캐릭터성이 무너진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잊지 말아야 할 것은, 피터가 그 전 영화들에서 큰 판에 덥썩 뛰어들 때에는 늘 토니의 뒤를 따라가고 있었다는 점이다. 꼬마 시절 [아이언맨 2]에서 아이언맨 가면을 쓰고 폭주하는 해머 드론 앞에 섰을 때 부터 [시빌 워], [인피니티 워]에 이르기 까지 말이다. 우주 클라스로 진출하고 블립에서 살아 돌아오기 까지 했으면서 다시 소시민적 영웅으로 후퇴한 것은 사사로운 연애 감정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 보다는 멘토의 부재에서 오는 일종의 공황상태인 것이다. 끌어 주는 사람 없이도, 따라가고 싶은 사람이 앞장 서지 않아도 자신의 의지로 싸움을 받아들이는 것이 이 영화에서 보여주는 피터 파커 소년 성장담의 핵심일테지. 그리고 그것이 완성된 순간, 피터 찌리릿도 온전히 자기 것이 된다. 마지막 찌리릿 시퀀스 존나 멋있었다.


이번 영화는 피터가 토니 스타크라는 큰 그림자를 극복해 내듯이, 어쩌면 샘 레이미 트릴로지라는 거대한 산을 뛰어넘기 위한 시도처럼 보인다. 톰 홀랜드 피터가 공중을 자유자재로 허공답보하며 드론 떼를 공략하는 장면은, 샘 레이미의 [스파이더맨 3]에서 토비 맥과이어가 추적 기능 달린 호박 폭탄들을 상대하던 시퀀스의 일백배 쯤 화려하다. 또한 [스파이더맨 3]에서 가장 구린 장면 중 하나가 거대화 샌드맨 장면인데, 이번 영화에선 보란 듯이 샌드맨이며 하이드로맨이며 멍청한 CG 괴수들을 끊임없이 내보낸다. 그리고 그것들을 물리치는 모든 과정이 사실은 허풍선이 노름일 뿐이라며 선을 긋는다. 그래놓고 J. K. 시몬스는 왜 다시 불러왔는가. 당신도 적당히 거절했어야지 모냥 빠지게 뭘 또 나와요.


영화 마지막에 이르러서는 엠제이와 뉴욕 마천루 숲을 가르며 웹스윙으로 마무리. 드디어 스파이더맨이 뉴욕에 입성했다. 없어서 섭섭할 뻔 했던 우리의 친근한 황색언론 "나팔 일보"도 돌아왔다. 우리 피터 다 컸으니 이제 여러분이 아는 그 스파이더맨 이야기 시작합니다, 하며 보내는 윙크다. 이제서야, 하지만 반갑다.







연출 존 왓츠
각본 크리스 맥켄너, 에릭 서머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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엠제이 존나 귀엽다. 1편보다 더 귀여워졌다.
게다가, 살인 소설 좋아하는 음모론자가 슈퍼히어로 여자친구라니, 너무 유니크하잖아.




덧글

  • 잠본이 2019/07/13 00:56 #

    문제는 미스테리오의 뒤통수가 너무나 강렬하야 본의아니게 토니의 뒤를 따라 맨얼굴을 까버리게 되었다는 건데 그건 어찌 수습하려나 궁금합니다.
  • 멧가비 2019/07/13 05:36 #

    정체가 까발려진 그 뉴욕이야말로 정말 평행우주가 아닐까, 추측해 봅니다
  • 잠본이 2019/07/14 02:35 #

    파이기 인터뷰에선 이후에 대해 '이제까지 어디에서도 시도한적 없었던 피터파커 이야기를 그려낼 것'이라며 미리 계획을 다 세워두었다고 하는데 과연 믿어도 될는지 모르겠더군요.
  • 우르 2019/07/14 20:21 #

    개인적으론 지난 엠제이보다 이번 엠제이가 훨씬 좋더군요. 그리고 역시 누가 뭐래도 스파이더맨의 숙적이 돌아와서 좋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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